혁명은 제도권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by 신성규

모든 제도는 안정과 질서를 위해 존재한다.

국가, 종교, 언론, 학계, 정당, 기업 모두 마찬가지다.

제도는 사회를 조직화하고, 유지하고, 반복 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기능 때문에

제도는 항상 ‘변화’를 억제한다.


제도는 시스템에 균열이 가는 걸 두려워한다.

새로운 담론은 기존의 언어를 부수고,

새로운 윤리는 낡은 권위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는 늘 가장 먼저 “혁명”을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모든 진짜 혁명은

가장 먼저 언어를 파괴한다.

예수는 성전 밖에서 말했고,

루소는 학회 밖에서 외로이 썼으며,

마르크스는 독일 철학계를 떠났고,

촘스키는 제도 바깥에서 가장 급진적인 말을 했다.


그들은 모두 기존 체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새로운 말, 새로운 윤리, 새로운 감정을 설계했다.


제도는 말한다.

“그건 현실성이 없어”

“그건 급진적이야”

“그건 과격해”


하지만 바로 그 급진성, 과격함, 현실 부정이야말로

기존 질서가 말하지 못한 진실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면 왜 제도권에선 혁명이 불가능한가?


가장 큰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제도 내부는 이미 자기 자리를 확보한 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변화가 아닌 ‘현상 유지’에 이해관계가 있다.


제도는 항상 기존의 언어, 기존의 사고 방식, 기존의 이념 위에 서 있다. 새로운 말은 제도 안에서 ‘비문법적’이다.


제도권 인물은 급진적 언행을 할 경우 조직 내에서 고립되거나 실각한다. 제도는 내부 비판을 시스템적으로 억제한다.


결국 제도란, 변화가 필요한 순간

스스로를 보호하는 쪽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근본적 변화는 언제나 외부에서 온다.


혁명은 제도에 ‘요청’하지 않는다.

그것은 출현한다.


마치 봄이 겨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듯,

혁명은 시스템의 허락 없이,

그 밖에서 벌써 자라고 있다.


오늘날,

기후 운동도,

페미니즘도,

노동 문제도,

모두 처음엔 ‘비정상’, ‘비주류’, ‘과격함’으로 몰렸다.


하지만 그 담론은 끈질기게 생존하고,

결국 주류 언어에 금을 내기 시작한다.


제도는 말한다. “너는 틀렸다.”

혁명은 말한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옳다.”


제도는 구조다.

혁명은 출현이다.

제도는 반복이고,

혁명은 틈에서 피어나는 변화의 불꽃이다.


그러니 새로운 세계는

항상 ‘밖’에서 먼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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