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구멍이 뚫렸다고 느껴질 때,
사람은 자주 섹스에 탐닉한다.
그것은 쾌락을 위한 본능적 욕망이라기보다는,
존재를 확인하려는 발버둥에 가깝다.
누군가와 연결되었다는 감각,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있다”는 확신,
사랑이 불가능한 상태에서조차
몸으로라도 그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
그것은 사랑의 부재가 만든
신체적 존재 감각의 과잉이다.
사랑이란 결국
내가 ‘존재해도 괜찮다’는
인정과 수용의 경험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관계가 깨어지고,
내면의 고요가 사라졌을 때,
사람은 깊은 존재의 불안에 빠진다.
이때 마음은 투명하지만,
몸은 무겁다.
정신은 사라진 듯하고,
몸만이 ‘나’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듯하다.
그래서 섹스는 일종의 자기 증명이 된다.
“나는 아직 타인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증명.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감각.
그러나
그것은 종종 더 깊은 공허로 귀결된다.
섹스는 두 존재가 만나는 길이기도 하지만,
사랑 없는 섹스는 오히려
자신이 더 고립되었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육체는 닿았지만
마음은 닿지 않았고,
그 단절은
더욱 날카로운 외로움으로 돌아온다.
섹스가 ‘사랑의 대체물’이 되는 순간,
그것은 점점 더
존재의 고통을 잠시 덮는 진통제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진통제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
내 안의 구멍은
누군가의 손길로 메워질 수 없다.
그 구멍은 타인이 만든 듯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나를 인정하지 못한 흔적일 수도 있다.
몸은 잠시 위로해줄 수 있다.
그러나 진짜 회복은
내 안에서 스스로를 껴안을 때 시작된다.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고,
사랑 없이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 단단한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는
어떤 연결도 오히려 나를 더 외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