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행위다.
가족과 신뢰를 저버리는 것,
서약을 어기는 것,
그 행위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말의 무게,
“나를 너무 외롭게 만들었어”라는 고백은
단순히 변명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깊은 인간의 결핍을 담고 있다.
가정 안에서,
오랜 관계 안에서,
사람은 때때로 투명해진다.
언젠가부터 ‘엄마’, ‘아빠’, ‘남편’, ‘아내’라는 역할만 남고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은 사라져간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되길 바라는 침묵,
함께 있지만 서로 보지 않는 시선.
그 속에서
나는 점점 존재감을 잃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며
“당신은 아름다워요”라고 말해줄 때,
나는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당신은 아직도 한 사람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요”라는
존재의 회복 선언이기 때문이다.
불륜은 옳지 않다.
누군가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고,
가족을 상처 입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동기에는
비난만으로는 지워지지 않는 정서적 진실이 있다.
‘나는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나는 여자로, 남자로,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살아있는 존재로 대해줬다’
이 감정은 윤리의 기준에서 벗어났더라도
한 인간의 고통의 기록이다.
우리는 그 행위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그 감정을 부정만 하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여자로 다시 살아났다.”
“나를 사랑으로 대해줬다.”
이 말은 곧,
오래된 관계 속에서 그가 얼마나 사라져 있었는가를 드러낸다.
불륜은 그저 성적인 일탈이 아닐 때가 많다.
그건 “당신은 괜찮다”는 말이
너무 오래 들리지 않았을 때,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마지막 몸짓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는 분명 잘못이다.
아무리 이해 가능한 동기라 해도,
상처 입은 이들은 존재하고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건
이해가 곧 면죄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잘못된 행동도 인간의 외로움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난만으로 세상을 치유할 수 없다.
이해는 더 깊은 예방을 가능하게 한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건
서약의 기억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는 눈빛의 지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