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당을 줄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 것을 거부하고 있다.
설탕이 들끓는 음료를 피하고, 초콜릿도 꺼렸다.
입안 가득 퍼지던 달콤함, 뇌를 잠시 무장해제시켜주던
그 짧은 평온의 시간들을 나는 의도적으로 밀어냈다.
그랬더니, 이상한 변화가 찾아왔다.
작은 말에도 마음이 욱신거렸고,
소음이 더 시끄럽게 들렸고,
사람들의 표정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예민해졌다.
처음엔 의아했다.
그저 설탕을 줄였을 뿐인데,
왜 내 신경계 전체가 파르르 떨고 있는 걸까?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이건 금단 증상이다.
내 뇌는 오랫동안 단 것을 먹으며 안정을 취해왔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설탕의 도파민 보상에 의존해 왔던 것이다.
단맛은 단순한 입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감정을 잠시 덮는 정신적 마취제였다.
쏟아지는 감정의 쓰나미 앞에서
나는 초콜릿 한 조각을 삼키며 나 자신을 달래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모든 방어막을 벗은 채,
날것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신경계가 바짝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나를 조금 더 부드럽게 감싸기로 했다.
그래서 마그네슘 영양제를 샀다.
신경을 진정시키고, 근육을 이완시키는
그 미네랄의 힘이 내 안에 퍼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 내 생화학을 돌보겠다는 다짐처럼
나는 작은 보조제를 손에 쥐었다.
당분이 사라진 자리에
나의 본래 감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경질, 무기력, 불안,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억누르고 미뤄왔던 것들이다.
설탕이 그들을 조용히 눌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이 예민함은,
사실 ‘진짜 나’가 다시 고개를 드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마침내 내 감정과 직접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삶은 언젠가 쓴맛과 단맛의 균형을 배워야 한다.
단맛은 안락함이지만,
쓴맛은 진실이다.
나는 지금 그 진실의 영역에 들어섰고,
그것이 어지럽고 불편하더라도
이것이 곧 명료함의 시작임을 안다.
당분이 줄어들고
감정은 날카로워졌지만,
그 날카로움은
나를 깨어있게 한다.
아마 이 고비를 지나면,
나는 설탕 없이도 충분히 나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달콤함이 아닌 평온함,
자극이 아닌 자각으로 사는 법을
조금은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작은 마그네슘 한 알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