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섹스를 해도 사정하지 못한다.
자극은 있다.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그 끝으로, 나는 가지 못한다.
몸은 연결되어 있는데, 감각은 멀다.
나는 마치 끝나지 않는 물결 위에 떠 있다. 도착 없이 흘러만 가는.
왜일까.
어떤 이는 나에게 ‘예민해서’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흥분하지 않아서’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어떤 감정도, 감각도, 나를 절정으로 밀어붙이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너무 깨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섹스를 하면서도 나는 사고한다.
지금 이 감정은 진짜인가?
그녀는 지금 진심인가? 가짜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혹시 임신하면 어떡하지?
이 관계 때문에 내가 이 사람을 책임져야 하나?
이 수많은 생각들이 내 몸을 조율한다.
감각을 억제하고, 리듬을 분석하며, 나를 ‘조절’한다.
나는 쾌락을 느끼는 대신, 쾌락을 관리한다.
이 수많은 판단과 사고들이, 나를 내 육체로부터 분리시킨다. 쾌락은 신체에 남고, 나는 뇌 속을 떠돈다.
나는 ‘지금’에 있지 않다. 나는 ‘이후’를 대비하고, ‘과거’를 되짚으며, ‘지금의 나’를 관찰한다.
섹스의 중심에는 쾌락이 아니라 불안이 있다.
그래서 나는 끝나지 않는다.
절정에 이르지 않는 건, 욕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통제욕이 너무 강해서다.
나는 ‘사정하지 못하는 자’가 아니다.
나는 ‘항상 머물러 있는 자’다.
나의 성은 흐르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멈추어 있고, 계산되고, 통제되어 있다.
그러나 그 통제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다.
임신의 가능성, 파국의 가능성, 사랑의 소용돌이.
나를 삼켜버릴지도 모를 감정 앞에서,
나는 끝까지 가지 않음으로써 나를 지켜낸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묻는다.
이것은 나를 지키는 방식인가,
아니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삶을 유예하는 방식인가?
나는 끝에 도달하지 않음으로써 살아남는다.
하지만 그 끝에 가보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나를 조용히 조여 온다.
나는 사정하고 싶다.
감각에 휘둘리고, 판단 없이 흐르고, 모든 것을 잊은 채 도달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의식의 감옥 안에 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이 감옥은 밖에서 나를 가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감시탑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