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언어는 듣는 순간 불쾌함을 먼저 남긴다.
‘nigger’라는 단어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역사적 폭력성과 모욕의 기억은,
단순히 발화되는 것만으로도 사회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존 레논의 노래 제목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는
단순한 여성 해방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것은 불편함 자체로 말하는 언어이며,
타자화의 구조를 폭로하는 선언이다.
우리는 종종 ‘여성’을 생물학적 성별로 환원하지만,
존 레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녀에게 얼굴을 꾸미고 춤추라고 한다.
우리는 그녀가 말할 때 비웃고, 말하지 않으면 ‘무지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단지 여성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 자체가 구조적으로 왜곡되고 규정되는 과정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말한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여성은 ‘존재’가 아니라,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타자이다.
레논은 ‘nigger’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 억압이 개별적 차별을 넘는 구조적, 문명적 폭력임을 말하고자 한다.
흑인이 식민주의 하에서 존재 자체가 열등하게 구성되었듯,
여성도 현대 사회에서 존재론적으로 낮은 지위로 정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때 ‘nigger’는 특정 인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회의 말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존재, 가장 오래된 타자화의 상징이다.
존 레논의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We insult her every day on TV, and wonder why she has no guts or confidence.
우리는 매일 TV에서 그녀를 모욕하고, 왜 그녀에게 용기나 자신감이 없는지 궁금해한다.
이것은 푸코의 말처럼,
권력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을 통해 사람을 형성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여성은 꾸며야 하고, 웃어야 하고, 상냥해야 하며, 조용해야 한다는 기대.
그 기대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화하지 못한 채,
타인이 부여한 정체성을 내면화하는 자아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존재의 은밀한 침묵화다.
존 레논은 음악이라는 가장 감각적인 매체를 통해
실존의 질문을 대중에게 폭발적으로 밀어붙인다.
‘여성은 세계의 니그로다’라는 문장은
사회가 얼마나 쉽게 한 존재를 비인간화하고,
그 과정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소비하는지를 드러낸다.
그것은 철학자가 말로 오래 곱씹은 개념을,
하나의 노래 제목이 단번에 사회의 맥을 짚어버리는 순간이다.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이 문장은 세상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논란은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타자’로 만들고 있는가이다.
그 타자는 여성일 수도 있고,
성소수자, 정신질환자, 노동자, 이방인일 수도 있다.
존 레논의 이 한 문장은 말한다.
가장 억압받는 자의 입에서 세계의 진실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곧 인간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