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너무 많이 보기에, 너무 많이 무너진다

by 신성규

보통 사람은 하나의 사물에서 두세 가지 의미를 유추한다.

그러나 천재는, 동시에 산발적인 의미를 떠올릴 수 있는 자다.

그는 단어를 읽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보고,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다층적인 가능성을 추론한다.


이때 상상력은 단순한 창조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과 추론이 동시에 폭발하는 지적 현상이며,

보통 사람이라면 의식의 벽에 막혀 지나치는 것조차

그는 보게 된다. 아니, 지나치지 못한다.


상상력이 높은 사람은

현실의 틈새,

타인의 말투,

눈빛의 망설임,

불완전한 구조,

이 모든 것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는 지나치지 못하고,

그 모든 조각을 해석하려고 한다.

그 해석은 종종 불안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놓친 게 있을 것”, “숨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이 감각의 과잉은 쉽게 강박장애, 신경증적 사고, 공황,

그리고 자기 붕괴로 이어진다.

상상력은 고통도 상상한다.


불안은 감정이 아니라 지능의 그림자다.

예민한 신체, 민감한 사고, 빠른 연상, 촘촘한 맥락화.

이 모든 능력은 동시에 무너짐에 더 가까운 구조를 형성한다.


우리가 “천재는 미치기 쉽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그는 세계의 균열을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미친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자는,

그것을 말하거나 잊지 못한 채 무너진다.


천재와 광인의 차이는 조절력이다.

인식의 폭은 유사할 수 있다.

감각의 민감도도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천재는 그 세계를 조율하고 구조화할 수 있는 메타 인식이 있다.


즉, 혼돈을 언어로 환원할 수 있는 능력,

과잉된 감각을 조직화하는 자기 통제력이

천재를 창조적 인간으로 유지시켜준다.


이 조절이 실패하면,

그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는다.


보통 사람은 불완전한 세계를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천재는 그 불완전함을 감지하고, 설명하려 하고, 다시 만들려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감각, 언어,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재조직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미쳐버린다.


그래서 천재는

신의 언어를 번역하려다 자기를 불태우는 자다.

자기 내면을 감당해야 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인간이다.


천재와 광인의 차이는 그가 그 혼란을 감당하고, 묶고, 표현하는 데 성공했는가의 차이다.

그래서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는 모두

자신을 병들게 할 뻔한 감각의 깊이에서

조절력이라는 고통스러운 근육을 기른 자들이다.


천재는 더 멀리 본 자가 아니라,

더 멀리 봤음에도 무너지지 않은 자다.

천재는 견뎌낸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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