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by 신성규

인간은 자신을 신처럼 만들고 싶어 했고,

신은 어느 순간 인간이 되려 했다.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는 서로 다른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그 둘은 모두 한 가지 질문을 향한다.

“고통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들은 질투하고, 사랑하고, 욕망하고, 배신한다.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그들은 자주 실패하고, 분노하며, 질투심에 가득 차 인간의 운명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반면, 기독교의 신은 절대자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아들을 보내,

인간의 육체를 입고,

고통을 경험하고,

죽음을 겪고,

부활한다.


두 세계는 다르지만,

둘 다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속에 의미가 있다.”


신화는 고통의 기원을 설명한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었고,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쳤다.

지식을 갈망한 이들은,

신의 질서를 어긴 자들로서

벌을 받고 추방된다.


그러나 이 ‘죄’는 단순한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넘침이다.

경계를 넘고자 한 욕망의 선언이며,

인간이 더 이상 순종하는 동물이 아닌,

신을 닮고자 한 존재라는 증거다.


결국 인간은 고통을 겪으며 성장한다.

그 고통은 대가가 아니라

변화의 입구다.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는 찢겨 죽은 뒤 다시 태어나고,

기독교의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은 후 부활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통과다.

모든 탄생은 죽음을 동반하며,

모든 변화는 고통을 통과한다.


우리는 신화를 읽으며 타인의 이야기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내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오늘도 오르페우스처럼 사랑을 잃고 지하로 내려간다.

누군가는 예수처럼, 말 없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누군가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지식을 위해 태양을 훔치려 한다.


신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인간이 내면에서 반복하는 패턴들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작은 신이고,

모두 죄를 짓고 있으며,

모두 언젠가 부활을 기다리는 존재다.


신은 왜 인간이 되려 했는가?

그 질문의 대답은 어쩌면 이 한 문장일 것이다.


“신조차도 인간의 고통 없이 완성되지 못한다.”


신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진정한 변화는, 고통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통과의식은 언제나

사랑, 욕망, 죽음, 용서, 구속 같은

원형적 상징을 동반한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7화인간 행동의 숨은 원동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