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그림자 속에서

by 신성규

나는 때때로, 말이 나를 드러낸다고 믿는다. 내가 침묵을 마치고 입을 열 때, 단어들은 내 안의 혼돈과 감정, 어떤 구조화되지 않은 고요의 덩어리를 바깥으로 꺼낸다. 그 순간 말은 마치 나의 얼굴 같고, 나의 손 같고, 나의 목소리 같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증명하는 유일한 실마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말을 하고 나면 더 허전해진다. 마치 무언가를 꺼냈지만, 진짜 중요한 건 꺼내지 못한 채, 껍데기만 건네준 기분이다. 내가 느낀 고통이나 기쁨은 말보다 더 복잡했고, 더 진했고, 더 무너질 듯 컸는데—그걸 담기엔 말이라는 그릇이 너무 작다.


그래서 나는 말한 후에 자주 후회한다. 말이 나를 표현하게는 했지만, 진짜 나와는 조금 어긋나 있다. 말은 언제나 조금씩 왜곡하고, 단순화하고, 오해를 낳는다. 그럴 바엔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솔직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말은 나를 ‘표현하게’ 하지만, 그것이 ‘나’는 아니다.


세상은 말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서로 말하고, 웃고, 설명하고, 해명하고, 설득한다. 하지만 그 많은 말 속에 진짜 ‘이해’는 얼마나 들어 있는가.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왜곡하고, 놓치기 쉽다. 말이 건너가지 못하는 간극, 그것이 인간 사이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말의 무게를 자주 묻는다. 말이 나를 구성하는가, 아니면 말은 그저 내가 머무는 껍질에 불과한가. 나라는 존재는 말 이전에도 있었고, 말 없이도 울고 웃으며 존재해 왔음을 떠올린다.


결국 나는 안다. 말은 나를 가장 가까이서 배신하는 도구라는 것을. 말은 나를 보여주는 동시에 나를 가린다. 그것은 표현인 동시에 은폐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말과 거리를 둔다. 조금 느리게, 조금 조심스럽게 말하려 한다. 혹은, 말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말하지 않을 때조차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고민의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