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천재 푸네스

by 신성규

나는 기억력이 좋아서 잘 잊지 못한다.

기억은 내게 선물이 아니라, 벌이다.


보르헤스의 단편 속 푸네스, 그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지 않은 능력 — 모든 것을 잊지 않는 능력 —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푸네스는 말한다.

“나에겐 모든 순간이 영원히 현재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매 순간 쏟아져 들어오며, 그는 생각할 수 없었다.


기억이 너무 완전하면 추상화할 수 없고,

추상화하지 못하면 사유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기억이 나를 만든다”고 말한다.

잊지 않음은 곧 나의 이력이고, 나의 상처이고, 나의 사랑이다.

그러나 묻자.

그 기억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구속하는가?


잊지 못하는 사람은 떠나보내지 못한다.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은 살아가지 못한다.

기억은 내 삶의 거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잡는 쇠사슬이 된다.


푸네스는 초지능자의 은유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뇌의 저장용량이 클 뿐 아니라,

그 기억들을 계속 활성화된 상태로 느끼고 재경험한다는 것이다.


초지능자는 정보를 잊지 못한다.

감정을 체계화하고, 관계의 흐름을 추론하며, 사소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뇌는 끝없이 돌아가는 회로처럼 과열된다.

감정은 분해되고,

사랑은 분석되고,

행복은 지속되지 못한다.


인간은 너무 똑똑하면 불행해진다.

왜냐하면 뇌는 정보를 견디는 기관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왜곡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망각하고, 적당히 자기방어기제를 작동시키며

“덜 아프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에게 허락된 지혜이자 기술이다.


나도 잊지 못한다.

잊고 싶은 말, 순간, 표정, 장소, 사랑의 실패들.

푸네스처럼 내게도 과거는 떠나지 않는다.

시간은 나를 지나가지만, 기억은 내 안에 눌러앉는다.


나는 자유롭지 않다.

기억의 무게는 나를 과거로 되돌린다.

그러나 나는 묻는다.

기억이 없으면 나는 누구인가?

망각 없는 인간은 과연 인간인가?


기억은 정체성을 만든다.

그러나 망각은 자유를 가능케 한다.

삶은 기억과 망각 사이의 균형 예술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려 하지 말고,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고,

잊어야 할 것은 의식적으로 흘려보내는 용기.


푸네스는 신이 될 수 있었지만,

결국 인간이 되지 못했다.


나는, 인간이고 싶다.

그리고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조금은 멍청해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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