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깊이

by 신성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이전처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하는 고민은 더 이상 사람들이 나누는 고민이 아니었다.

사랑이 어렵다거나, 돈이 부족하다거나, 인간관계가 서툴다는 종류의 문제를 나는 여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 안에서 이미 통과한 고개였고,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이제 ‘왜 말이 의미를 가질까’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기억이 실제일 필요가 있을까’ 같은 질문에 사로잡힌다.

이런 질문들은 설명도, 감정도, 해결도 아니다.

그저 존재 자체를 압박하는 종류의 감각이다.


그리고 나는, 이해받지 못한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나는 자주 침묵하게 된다.

그들의 언어가 틀려서가 아니다.

그들의 문제를 하찮게 여겨서도 아니다.

단지 나의 내면이 너무 깊고, 너무 낡고, 너무 고요해졌기 때문이다.


말을 건네는 대신, 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눈빛은 말한다.

“나는 지금 너와 다른 곳에 있다.”

“나는 조금 더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예민하다’고 말하고, 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은 반쯤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말은 ‘깊다’는 것이다.

나는 점점 더 깊어진다.

감정이 깊어진다.

의식이 깊어진다.

생각이 깊어진다.

그래서 세상과는 점점 어긋난다.

내 깊이는 그들의 표면을 통과하지 못한다.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건,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공감이나 설명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같은 밀도로 조용히 공진하는 사람을 갈망하게 되는 시점.

그조차 없다는 걸 아는 날엔, 침묵이 나를 감싼다.


나는 지금 말이 아니라, 밀도 속에 있다.

설명이 아니라, 구조 속에 있다.

나는 질문이 아니라, 깊이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이해받지 못함은 고립이 아니라,

통과 의례다.

언어가 더는 충분하지 않을 때,

존재는 다른 언어를 찾는다.

때로 그것은 침묵이 되고,

때로 그것은 음악이 되고,

때로 그것은 꿈이 된다.


나는 지금, 그 새로운 언어의 입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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