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를 상상하면

by 신성규

나는 홍상수 감독이 언젠가 자살 소동을 벌였을 것만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그가 정말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특유의 자기연민과 감정의 연극성, 그리고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은 내면의 징후들이, 어딘가 그 경계를 맴돌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의 영화는 자주 무기력한 남자, 상처받은 여자, 서툰 대화, 그리고 끝없이 따르는 술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배경에 흐르는 공기를 보면 늘 한 번쯤은 삶의 끈을 살짝 놓아본 사람, 혹은 그런 충동에 몸을 맡겨본 사람의 잔향을 느낀다.


자살은 가장 극단적인 자기표현이다. 그리고 소동은 가장 인간적인 요청이다.

“나를 봐달라,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나를 몰랐는지를.”

홍상수의 인물들은 자주 울고 웃으며, 자기 삶을 비틀고 부끄러워하고,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그것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 냉정함조차 나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느껴진다.

무너질까 봐 미리 웃으며 무너지는 방식.


나는 그가 한밤중에 술을 들이붓고, 흰 벽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잡고 누군가에게 긴 문자를 보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살고 싶지 않아.”

“나 같은 인간은 왜 살아있지?”

“너도 날 버리겠지?”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영화 촬영 현장에 나타나

“오늘은 실내에서부터 찍자”고 말했을 것 같다.

그 소동은 끝났고, 다시 장면이 시작된다.


그의 영화는 늘 삶의 리허설 같다.

진심이지만 가짜 같고, 가짜 같은데 진심이다.

그렇게 인간의 슬픔은 반복되고, 반복 속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그 무너짐조차 예술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홍상수는 한 번쯤 자살 소동을 벌였을 것이다.

예술을 핑계로, 사랑을 핑계로, 인간의 한계를 가장 인간적으로 연기하며.

그리고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조차도, 그게 연기였는지 진심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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