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나의 미감이 이상해졌다고 느낀다.
C컵도 작아 보이고, 슬랜더한 몸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대신 F컵의 볼륨과 잘록한 허리, 그 곡선 위로 드러나는 무언가에 눈길이 간다.
그것은 단순한 ‘크기’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예감이다.
한때 나는 요정 같은 여자를 좋아했다.
가볍고, 도망갈 것 같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버릴 것 같은 존재들.
그들은 현실의 무게로부터 나를 유예시켜 주었고, 내가 삶을 견딜 수 있도록 잠시 머무는 빛이었다.
그 몸에는 무게가 없었고, 감정엔 깊이가 없었으며, 그 부재의 존재가 나를 설레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제 육체를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
곡선, 가슴, 부드러운 선들, 무게, 존재감, 체온.
더 이상 나는 날아가는 것보다, 나를 붙들고 있는 것에 마음이 간다.
왜일까.
나는 내가 남성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피로한 세상 속에서, 나를 품어줄 온기와 실체를 갈망하는 것일까.
혹은 이것은 단지, 감각의 무뎌짐이 자극의 강도를 바꾸었을 뿐일까.
SNS, 광고, 영상매체가 만들어낸 초현실적 여성 이미지가, 내 뇌를 재구성했을 수도 있다.
예민했던 나의 시선이 이제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내 미감의 변화는, 내 안에서 무언가가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내가 여성을 보는 눈은, 사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다르지 않다.
요정을 좇을 때의 나는, 무중력 상태에 머무르고 싶었다.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육체를 사랑하고, 굴곡을 이해하고, 체온을 갈망한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을 원한다.
어쩌면 이건 나의 삶이 ‘무게’를 요구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나를 흔들어 깨울 수 있는 여성성을 찾는다.
본능, 생명, 모성, 감수성, 그것들은 내가 부재해왔던 것들이다.
슬랜더는 아름다웠지만, 나를 가두지는 못했다.
이제 나는 붙잡히고 싶다.
누군가의 곡선 속에, 따뜻함 속에, 현실의 무게 속에.
극단의 변화는 나에게 익숙하다.
나는 언제나 경계에 살았고, 이쪽 끝과 저쪽 끝을 번갈아 탐색했다.
미의 기준조차도 나에겐 철학이었고, 변화는 곧 사유였다.
그러니 오늘의 나 또한 낯설지만 진실하다.
이 감각이 내일 다시 바뀌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는 확실히 여기에 있다.
내 미감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 흔들림과 이동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진짜 내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