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종종 생각한다.
왜 여배우는 벗어야 뜰까?
이건 단지 에로틱한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구조,
그리고 산업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방식에 관한 질문이다.
전종서. 김태리. 임지연.
내가 주목하게 된 여배우들은 거의 모두 초기작에서 노출을 감행했다.
단순히 벗은 것이 아니라, 인물의 존재 자체를 흔드는 강렬한 장면 속에서 몸을 던졌다.
그건 단지 육체의 노출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태도, 각오, 밀도였다.
그러나 묻고 싶다.
그 열정은 자발적이었을까?
아니면 산업이 미리 짜놓은 성적 증명의 관문이었을까?
남자배우는 흔히 액션으로 증명받고,
여배우는 자주 벗음으로 주목받는다.
액션은 기술이고,
벗음은 감정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이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몸을 통과하지 않으면 여성은 ‘진짜’ 배우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 구조 안에서 ‘벗음’은
자유라기보다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그들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그녀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보다,
어디까지 벗었는지가 더 오래 기억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여배우들의 벗음이 정말로 그 장면과 캐릭터를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강한 예술적 인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김태리는 아가씨에서,
임지연은 인간중독에서,
전종서는 버닝에서
육체를 통해 인물의 혼란, 욕망, 해방, 뒤틀림을 표현했다.
그건 단순한 노출이 아니라, 연기의 한계를 뛰어넘은 연기였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켠이 씁쓸하다.
왜 그것이 여성만의 증명 방식이어야 했을까.
남자는 정장을 입고도 연기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데,
왜 여자는 ‘벗음’으로 예술성을 증명해야 하는가.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열정이 있어서 벗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열정’ 자체가 이미
어떤 시스템의 내면화였는지도 모른다.
벗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하는 구조,
벗은 이후에야 “연기 잘하네”라는 평가가 붙는 구조,
그 구조를 받아들이면서
그녀들은 배우가 되었고,
우리는 그 구조 속에서
그녀들의 연기를 기억하게 된다.
예술이란 결국, 누군가의 진심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여성의 진심은
종종 몸을 통해서만 전달되도록 강요당한다.
나는 그 세계를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벗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벗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시선이 문제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