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어떤 순간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건드리는 감정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이 우리를 구원해주길 바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덮어주고,
나를 이해해주고,
내 과거를 지워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사랑은 우리를 치유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히려 우리가 가진 상처를 가장 먼저 만진다.
사랑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시작되지만
결국 ‘존재’ 자체를 확인하고, 흔들고, 깨뜨리는 감정으로 변한다.
사랑은 말한다.
“너는 지금 여기 있다.
너는 나에게 느껴지고,
나는 너에게 반응하고 있다.”
그건 누가 더 옳은지, 누가 더 잘해주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존재를 흔들어놓는 진동이다.
사랑은 그렇게 쓸모없다.
그러나 그 쓸모없음이
가장 인간적인 미학이다.
우리는 모든 걸 성과로 계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사랑마저도 ‘조건’, ‘능력’, ‘외모’, ‘가치’로 평가한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그 모든 계산을 망가뜨리는 일탈이다.
사랑은 논리의 바깥에서 자란다.
그리고 계산되지 않는 자리에서 피어난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느끼는 어처구니없는 감정들,
예를 들면
아무 말 없이 옆에만 있어도 좋은 마음,
이유 없이 불안해지는 마음,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은 갈증…
이 모든 것은 비생산적이면서도 강렬한 감정의 절정이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가 이 세계에 아직 시적인 것을 품고 있다는 증거다.
사랑은 완전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다.
사랑은 오히려,
불완전한 존재끼리 서로의 균열을 조용히 빛으로 비춰주는 일이다.
나는 너를 완성하지 못해도,
너도 나를 고치지 못해도,
우리 사이엔 이해받고 싶은 진심이 흐르고
그 진심은 사랑을 통해 발화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하나의 찬란한 미학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하지만 사랑은
구원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바꾸어놓는다.
사랑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지나간 순간들이 남긴 떨림이다.
그래서 사랑은 여전히 가치 있다.
아니,
사랑은 다른 어떤 감정보다
더 무용하고, 더 찬란하게 인간을 인간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