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조울증

by 신성규

나는 내 증상을 이렇게 이름 붙였다.

가슴 조울증.


하루는 빈유의 날,

다음 날은 거유의 날.

나는 내 욕망의 방향이 기상처럼 바뀐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조절 불가능한 기후처럼 변하는 감정의 바람.

그 변화무쌍한 내 취향에 스스로 헛웃음이 나왔다.


가슴 조울증은 성적 취향이 아니다.

이건 욕망의 날씨다.


슬랜더에 대한 끌림은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동경. 무게 없는 자유의 환상.

볼륨감 있는 여성에 강한 끌림은

따뜻한 현실감, 감각적 확실함, 지상으로의 회귀.

혼자 있을 때는 허리선에 집착하며 미적 구조를 분석하는데,

예술과 성애가 혼재된 감각이다.


나는 이 변화가 당황스럽지 않다.

오히려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건 나의 욕망이

하나의 틀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증거니까.

그리고 나는 가슴 조울증 속에서

내가 지금 어떤 정서를 갈구하는지를 읽을 수 있다.


슬랜더를 좋아할 땐,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

볼륨감에 끌릴 땐,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에 매달린다.

때론 예술을 사랑하고,

때론 몸의 무게로 추락한다.


사람들은 욕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말해도, 그것을 고정된 정체성처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욕망은 날씨다.

늘 바뀌고, 변덕스럽고, 예보도 빗나간다.


그래서 나는 병명 대신,

이제 나의 욕망을 예보한다.

증상이 아니라 기후처럼.


나는 가슴 조울증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날은 미적 최소주의에 끌리고,

어떤 날은 관능의 풍요로움에 잠긴다.

어떤 날은 둘 다 싫고,

어떤 날은 둘 다 좋다.


이 기이한 조울의 파도 위에서

나는 나를 웃으며 바라본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느냐보다,

내가 오늘 어떤 마음의 날씨를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다.


나는 나의 욕망을 병으로 부르지 않겠다.

대신, 그 날의 기후로 받아들이겠다.

오늘은 어떤 감정이 불어올까.

오늘도, 조용히 예보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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