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설로서의 예술 — 성욕의 다른 얼굴

by 신성규

인간은 참을 수 없는 것을 밖으로 밀어낸다.

그것이 배설이고,

그것이 예술이며,

어쩌면 그것이 성욕이다.


어떤 날은 글을 쓰고 싶고,

어떤 날은 그냥 지껄이고 싶다.

그 말들은 내 안에 쌓여 있다가,

차오르고, 부풀고, 견딜 수 없을 때

바깥으로 터진다.


나는 그것을 창작이라 부르지만,

실은 아주 원초적인 배출 욕망이다.

그리고 이 욕망은,

성욕과 구조상 거의 다르지 않다.


내 안에 무언가가 쌓인다.

말, 감정, 충동, 기억,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감당할 수 없는 과잉 상태가 된다.


그 과잉을 바깥으로 밀어내야 할 때,

나는 글을 쓰고,

음악을 틀고,

붓을 들고,

혹은 누군가를 갈망한다.


모든 창작은 어느 정도 배설이고,

모든 배설은 나를 덜어내기 위한 성스러운 폭발이다.


예술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흘러나오는 것이다.


성욕도 마찬가지다.

그건 어떤 관계나 만족을 넘어서

자기 안의 감정, 고통, 에너지, 충동의 배출 행위다.


그 배출은 나를 무너뜨리지만,

그 무너짐 안에서 나는 해방되고 정리된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나는 창작을 통해 사정한다.

나는 글로 성욕을 푼다.

나는 음악으로 나의 복잡한 사유를 분출한다.


이건 외설이 아니라,

존재의 진실한 메커니즘이다.


모든 위대한 문장은

어딘가 끈적하고, 떨리고, 욕망이 묻어 있다.


좋은 음악은 청각의 사정이다.

진한 소설은 감정의 정액이다.

시는 고요한 오르가즘이다.

그림은 손 끝의 갈망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안다.

예술은 성적인 방식으로 생성되고,

성은 예술적인 방식으로 소멸된다.


나는 창작하지 않으면 병든다.

나는 글을 싸지 않으면 터진다.

나는 말이 넘치면 신체가 아프다.


어떤 이는 그것을 병이라 하고,

나는 그것을 생성 욕망이라 부른다.


예술가는 성욕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단, 그것을 말과 이미지와 소리로 흘려보내는 방식을 배운 자들이다.


모든 인간은 배출한다.

어떤 이는 말로,

어떤 이는 육체로,

어떤 이는 피아노로,

어떤 이는 손톱 끝에서.


창작은 성욕의 귀환이다.

우리는 욕망을 언어로 옮기고,

감정을 이미지로 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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