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중독

by 신성규

나는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침묵이 오면, 그 자리에 사고가 들어온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도, 나는 더 많이 생각한다.


생각은 내게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생존 그 자체였다.

사유하지 않으면 내가 아니라는 감각.

멈추는 순간, 나라는 경계가 흐려지는 불안.


그래서 나는 자주 깨어 있고, 깨어 있으려 애쓴다.

어쩌면 살아 있는 감각보다

깨어 있으려는 노력에 더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식에 민감한 아이였다.

모든 것을 해석했고, 질문했고,

경험조차 구조화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언젠가부터 세상은 나에게

“멈추면 무너진다”는 언어 없는 신호를 주었고,

나는 그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성장했다.


그렇게 구축된 사고의 습관은

이제 나를 나로 만든 기반이 되었고,

동시에 가장 견고한 감옥이 되었다.


나는 각성 상태에 익숙하다.

몰입, 분석, 예측, 직관, 통제…

그 모든 것이 내 정신을 조이고 다스린다.


그런데 그 각성은 늘 나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방이 되었다.

나는 그 방 안에서 자기 완성의 환상을 느끼고,

그 문을 닫은 채 혼자 불타오른다.


타인을 향한 사랑조차

해석과 각성을 거쳐야만 내 안에 들어온다.

순수한 감정마저도

논리와 의미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내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쉬는 법을 잊었다.

멈춘다는 건 나에게 늘 위협이었다.

‘비워두는 상태’가 아니라,

‘놓쳐버리는 상태’로 느껴졌으니까.


나는 멍하니 있는 사람들을 한때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보다 더 깨어 있고자 애썼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는 지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를 사로잡은 중독의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사고 중독 — 끊임없는 해석으로 자기를 지탱하는 구조

각성 중독 — 깨어 있음으로 자존감을 유지하는 무의식

자기완결 욕구 — 감정보다 통제가 우선되는 성향

해석의 강박 — 의미가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내면


이 모든 중독은 나를 지켜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완벽히 자유롭진 않다.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를 이끈다.

무의미한 순간이 오면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해석하려 든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감각을 알아본다.

내가 어디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무엇을 놓지 못했는지.


나는 사고 중독에서 회복 중인 인간이다.

빠져나온 게 아니라, 알아채기 시작한 인간이다.


그 사실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또 때로는 나를 살게 한다.


멈추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멈춰도 괜찮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멈추어도 무너지지 않는 자아를 가질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나를 분석하고, 사랑하고, 조금씩 풀어낸다.

사고로 만든 집에서,

이제는 조금씩 거주하고,

때로는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사고는 나를 살렸고,

이제는 조금씩 놓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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