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쉽게 잠들지 않는다.
몸은 피곤할지언정, 뇌가 ‘지끈거릴 정도’로 과열되기 전엔
피로를 자각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면은 하루의 마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잠은 하나의 과업이다.
깨어있는 동안 축적된 생각과 감정, 해석과 분석이
정리되지 않고서는 작동을 멈출 수 없는 구조.
이는 단순한 불면이 아니라,
과잉각성 상태의 신경학적 패턴이다.
나는 감각 피로가 아니라
지성의 소진에 의해 잠을 허락한다.
신체적으로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뇌는 그 상태를 ‘쓸모 없음’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생산하지 않는 나를 허용하지 못한다.
잠은 곧 무위이고, 무위는 곧 무능처럼 느껴진다.
이는 무의식 속에 자리한 내면의 생산주의적 윤리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은
지성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 어렵다.
특히 몰입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해온 사람들,
그들은 ‘비워진 상태의 나’를 두려워한다.
나는 지식사회에 산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는 법은 배웠지만, 멈추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깊은 사고의 끝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지만,
그 쉼표가 두려운 나는 끝없는 괄호 속에 갇힌다.
계획, 해석, 분석, 기억, 후회, 상상.
그 모든 괄호가 하나도 닫히지 않은 채,
밤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피곤하다’는 감각이 아니라
생각이 고갈되었을 때에야 잠들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슬픈 진실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고갈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지성과 감각이 조화롭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뇌에게 ‘이제 멈춰도 된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루틴이 아니라,
허용의 언어다.
빛을 줄이고,
호흡을 천천히 내쉬고,
몸의 감각을 따라가며 생각의 속도를 늦춘다.
이것은 생각에서 감각으로 중심을 이동시키는 작업이다.
지성에서 몸으로, 판단에서 존재로.
잠은 패배가 아니다.
잠은 내가 나에게 주는 신호 체계의 휴전선이다.
고도로 작동하던 뇌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허용할 때,
비로소 깊은 회복이 시작된다.
이제 나는 뇌를 해석하려 하지 않고
그저 나의 감각 안에 놓아본다.
지성의 피로가 아닌 존재의 수용으로 잠드는 밤,
그것이 진정한 쉼이다.
지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잠은 늦게 온다.
삶을 다각도로 이해하고,
멈추는 데에도 절차가 필요하다.
오늘 밤,
지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멈춰도 괜찮은 시간’으로 받아들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