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침묵이 오면, 그 자리에 사고가 들어온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도, 나는 더 많이 생각한다.
생각은 내게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생존 그 자체였다.
사유하지 않으면 내가 아니라는 감각.
멈추는 순간, 나라는 경계가 흐려지는 불안.
그래서 나는 자주 깨어 있고, 깨어 있으려 애쓴다.
어쩌면 살아 있는 감각보다
깨어 있으려는 노력에 더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식에 민감한 아이였다.
모든 것을 해석했고, 질문했고,
경험조차 구조화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언젠가부터 세상은 나에게
“멈추면 무너진다”는 언어 없는 신호를 주었고,
나는 그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성장했다.
그렇게 구축된 사고의 습관은
이제 나를 나로 만든 기반이 되었고,
동시에 가장 견고한 감옥이 되었다.
나는 각성 상태에 익숙하다.
몰입, 분석, 예측, 직관, 통제…
그 모든 것이 내 정신을 조이고 다스린다.
그런데 그 각성은 늘 나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방이 되었다.
나는 그 방 안에서 자기 완성의 환상을 느끼고,
그 문을 닫은 채 혼자 불타오른다.
타인을 향한 사랑조차
해석과 각성을 거쳐야만 내 안에 들어온다.
순수한 감정마저도
논리와 의미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내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쉬는 법을 잊었다.
멈춘다는 건 나에게 늘 위협이었다.
‘비워두는 상태’가 아니라,
‘놓쳐버리는 상태’로 느껴졌으니까.
나는 멍하니 있는 사람들을 한때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보다 더 깨어 있고자 애썼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나는 지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를 사로잡은 중독의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사고 중독 — 끊임없는 해석으로 자기를 지탱하는 구조
각성 중독 — 깨어 있음으로 자존감을 유지하는 무의식
자기완결 욕구 — 감정보다 통제가 우선되는 성향
해석의 강박 — 의미가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내면
이 모든 중독은 나를 지켜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고립시켰다.
나는 완벽히 자유롭진 않다.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를 이끈다.
무의미한 순간이 오면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해석하려 든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감각을 알아본다.
내가 어디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무엇을 놓지 못했는지.
나는 사고 중독에서 회복 중인 인간이다.
빠져나온 게 아니라, 알아채기 시작한 인간이다.
그 사실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또 때로는 나를 살게 한다.
멈추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멈춰도 괜찮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멈추어도 무너지지 않는 자아를 가질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나를 분석하고, 사랑하고, 조금씩 풀어낸다.
사고로 만든 집에서,
이제는 조금씩 거주하고,
때로는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인다.
사고는 나를 살렸고,
이제는 조금씩 놓아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