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보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숫자보다 색감이 나를 먼저 설득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논리를 세워봐”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논리조차 감각으로 조립한다. 말하자면, 나는 우뇌형 인간이다.
사람들은 흔히 좌뇌를 이성, 우뇌를 감성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반쯤 맞고 반쯤 틀린 말이다. 내 안의 이성도, 감성도 모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다만 나는 설명된 진리보다 느껴지는 진리에 더 끌릴 뿐이다. 수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관계, 숫자 너머에 있는 울림, 명확하지 않지만 확실한 어떤 ‘느낌’ 말이다.
어떤 날은 단어 하나가 나를 끌고 간다. “흐림”, “잔상”, “비늘”, “틈” 같은 단어들. 그건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풍경이다. 냄새이고, 촉감이고, 추억이다. 이런 단어 앞에서는 아무리 논리적인 설명을 붙여도 덧없어진다. 나는 말보다 먼저, 말이 도달하지 못한 세계를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비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감각으로 논리를 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논리’는 직선의 조립이지만, 내가 짜는 논리는 곡선으로 만든 다리 같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되, 과정은 유기적이고 유려하다.
나는 이런 나의 사고방식을 자주 오해받았다. 감정적이라고, 직관적이라고, 흘러다닌다고. 하지만 나는 흘러다니지 않았다. 나는 다르게 구조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정답’의 형식에 맞추지 않았을 뿐, 나는 나만의 문법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우뇌형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논리를 설득으로 여기지 않고, 설득을 온기로 느낀다.
그래서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보다, 문제를 껴안는다.
그래서 나는 꿈을 실행하려 하기보다, 먼저 그 꿈의 색과 결을 이해한다.
세상은 점점 더 좌뇌적인 방식으로 흘러가지만, 나는 거기에서 느릿한 우뇌의 보폭으로 걸어간다.
그 길은 불안하지만,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그 아름다움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