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오르가즘

by 신성규


나는 연주자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피아노 앞에 앉은 사람, 바이올린을 껴안은 사람,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신을 소환하듯 건반을 누르는 사람들.

그들은 처음엔 ‘일하는’ 표정이다.

눈은 또렷하고, 이마에는 살짝 힘이 들어간다.

마치 지휘자 없는 전쟁터에서, 오직 음 하나하나로 질서를 부여하려는 듯한 얼굴.

의식은 분명하게 살아있고, ‘자기’는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그들은 음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의 눈동자가 흐릿해지고, 시선은 불확실한 공간을 향한다.

초점은 사라지고, 입술은 살짝 벌어지며, 어깨는 이완되고 손끝은 더 유려해진다.

이제 그는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 안에 ‘살고’ 있다.

그의 자아는 연주와 함께 흐르고 있다.

집중의 끝은 ‘자기 상실’로 향한다.


나는 그 표정을 안다.

그것은 오르가즘의 표정이다.

처음엔 또렷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지만, 절정이 다가올수록 인간은 시선을 잃고, 긴장을 잃고, 자신을 내려놓는다.

그때의 얼굴은 연주자의 얼굴과 닮았다.

아니, 정확히 같다.

‘이성의 장벽이 붕괴되는 순간의 얼굴’,

‘자기라는 경계가 흐려지는 얼굴’.

이것은 단지 성적 환희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해체다.


인간은 집중함으로써 자아를 조인다.

그러나 집중의 끝은 조임의 극한, 결국 풀림의 시작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은 그 지점을 넘는다.

작곡가, 시인, 화가, 무용가—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

사유로 시작해 사유를 해체하며, 기술로 시작해 기술을 버린다.

그들이 남기는 것은 계산된 결과물이 아니라, 자기라는 존재의 녹은 형상이다.


이것을 가장 정교하게 조각한 사람이 있었다.

베르니니.

그리고 그는 ‘성 테레사’를 택했다.


성 테레사의 황홀...

내가 처음 그 조각을 보았을 때, 두려움마저 느꼈다.

조각 속 테레사의 눈은 감겨 있다.

눈꺼풀은 짙고 두껍게 드리워져 있고, 입은 살짝 열려 있다.

그녀의 머리는 뒤로 젖혀져 있고, 몸은 반쯤 무너져 있다.

천사는 그녀의 심장을 찌르려 하고, 테레사는 찔림을 기다리고 있다.

그 표정은 분명히 황홀하다.

그러나 단순한 종교적 환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육체적이다.

그것은 몸이 깨어질 때만 가능한 얼굴이다.

이성과 영혼과 육체가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그 일치의 순간.


성 테레사는 실존 인물이었다.

그녀는 기도 중에 신과의 직접적 합일을 경험했다고 썼다.

그 순간, 자신의 육체가 공중으로 떠올랐고, 심장이 불타올랐으며,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녀의 체험은 완전히 내적인 것이었지만, 분명히 육체를 관통했다.

테레사는 신의 사랑이 너무 강렬하여 그것이 육체적 고통으로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울면서 쾌락을 느꼈고, 고통 속에서 신의 손길을 갈망했다.


이 얼마나 이상한 사랑인가.

이 얼마나 낯선 쾌락인가.

그것은 더 이상 이성도, 감각도 아닌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것은 몰입의 끝에서만 도달할 수 있는, 존재의 해체다.


연주자도, 연인도, 성자도 결국은 같은 방식으로 해체된다.

완전한 몰입이란 결국 ‘자기’가 사라지는 상태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가장 순수하게 존재한다.

쾌락은 그 부산물이거나, 혹은 진동하는 잔재이다.

그 해체의 순간, 우리는 인간이 되면서 동시에 인간이 아닌 어떤 것에 닿는다.

그것이 신이든, 예술이든, 타인이든 간에.


베르니니는 그것을 보았고, 돌에 새겼다.

나는 그것을 보고, 살아있는 사람들 속에서 다시 본다.

연주자의 눈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몸짓에서.

몰입하는 사람들의 흐트러진 숨결에서.


그리고 그 모두의 중심엔,

자기 자신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깊은 본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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