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꼬시는 것에서
여자가 먼저 옷을 벗을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쪽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타이밍이라는 마법이 그 일을 대신해주기를.
그건 무언의 약속 같았다.
어떤 몸들은 먼저 말하고,
나는 그 말에 나중에야 따라가는 몸이었다.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여자가 먼저 벗었다.
주저 없이.
마치 오래된 손짓처럼.
“괜찮아”라는 말을, 손이 먼저 말해주는 느낌.
내가 나이를 먹으니,
그쪽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벗겨야 했다.
나이가 들면 리드를 해야 한다.
리드란, 능숙한 손이 아니라
먼저 움직이는 몸이다.
상대보다 반 박자 앞서는 것이고,
동의 없는 채 우발을 해내는 것이다.
나는 아직 거기까지 못 갔다.
아직도 기다리는 편에 가깝다.
누군가 옷을 벗기를 기다리는 쪽.
나는 항상 먼저 벗기지 못했다.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다.
욕망은 있었다.
하지만 이성이 먼저 개입했다.
이성은 내 안의 감시자였다.
“지금은 너무 빠르지 않을까?”
“저 표정은 동의라고 보기엔 모호해.”
“혹시 이 손짓이 불편함을 만든다면?”
그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동안,
기회는 스쳐 지나갔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상대가 먼저 벗었다.
그녀들의 몸은 나보다 더 명확하게 결정을 내릴 줄 알았다.
그 후로 나는 종종 그런 순간을 되짚는다.
만약 내가 먼저 손을 뻗었더라면
그 밤의 기류는 달라졌을까?
아니, 달라지는 건 내 자존감일지도 모른다.
욕망보다 이성이 먼저 움직이는 남자에게
리드는 항상 늦는다.
그는 항상 먼저 벗기지 못한다.
그는 늘 설명하고, 확인하고, 읽고, 멈춘다.
어떤 여성은 그런 나를 ‘섬세하다’고 말했다.
어떤 여성은 그런 나를 ‘답답하다’고 했다.
하지만 둘 다 맞다.
나는 ‘확신 없는 손’이고,
‘동의에 과민한 눈’이다.
그런데도 이제는
내가 먼저 벗겨야 할 나이가 되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이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