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실존주의를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자유의 고통도, 책임의 공포도, 고독의 절망도,
한 번쯤은 지나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나’로부터 벗어나,
‘선택하고, 결정하고, 살아내는 나’가 되었다고 믿었다.
그때 나는 가벼웠다.
모든 무게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내가 그것들을 ‘운반하는 기술’을 익혔다고 여겼다.
어딘가에 닿았다고 생각했다.
비극을 수용했고, 무의미를 받아들였고,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다시
나의 생각 안에 갇혀 있다.
나의 이성, 나의 분석, 나의 계산, 나의 망설임,
그 모든 것이 철창이 되어 나를 감싼다.
나는 지금도 자유다.
그러나 이 자유는 실제의 공간이 아니라
이성의 덫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나의 머리로 다시 무너지고 있다.
내가 만들어낸 세계, 내가 짜놓은 해석의 그물망,
내가 설정한 의미, 내가 두려워하는 가능성.
그 모든 것이 나를 잠근다.
나는 외부의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내면의 감옥으로 이사했을 뿐이다.
실존주의를 한 번 넘어섰다고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파도를 넘은 것이지,
바다를 건넌 것이 아니었다.
실존은 한 번 극복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건 ‘다시 나를 마주하게 되는 형식’이다.
계속, 반복해서, 주기적으로.
삶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때마다
실존은 형태를 바꾸어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다시 여기에 있다.
생각에 파묻힌 나.
이성으로 무장한 나.
나 자신을 감시하고, 설득하고, 분석하는 나.
지독히 논리적인 감옥 속의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이 철창을 지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한 번 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갇히면서도
다시 자기를 넘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존주의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 한 번의 승리가 아니라
수많은 다시의 총합이다.
오늘은 또다시,
나를 다시 넘기 위한 하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