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자와 해석자

by 신성규

그림 앞에 서면, 나는 먼저 구조를 본다.

이 선은 어디로 이어지는가, 색의 톤은 어떤 감정을 지시하는가,

작가는 어떤 맥락을 배경에 숨겨두었고, 이 작품은 어느 미술사 흐름 속에 위치하는가.

그런 생각이 먼저 나를 덮친다.


나는 감상자가 아니라 해석자가 된다.

눈보다 머리가 먼저 반응하고, 마음보다 논리가 먼저 달려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예술가를 잃는다.


처음에는 예술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다.

더 깊게 알고 싶었고, 더 정밀하게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그럴수록,

나는 ‘느낀다’는 것 자체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예술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이론으로 고백하고 있다.


예술은 원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딱히 이유가 없더라도 울컥하고,

이해되지 않아도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다.

그저 “이 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이걸 만들었을까?” 정도의 질문이면 충분했다.

그때 나는 예술과 가까웠다.

그 사람과 가까웠다.


지금은 머리가 너무 많이 앞서 있다.

설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배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정서적 뉘앙스조차 분석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만큼 멀어졌다.


어떤 음악은 그냥 울면 되는 것이었고,

어떤 조각은 그냥 서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머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알아채던 시간이 있었다.

지금 나는 너무 똑똑해서, 그 무지의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걸 자주 느낀다.

나의 지성이 감각을 침식할 때.

나의 해석이 감정을 짓밟을 때.

나는 예술로부터,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걸.


예술은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다.

거기엔 더해도 뺄 것도 없는 충만함이 있다.

내가 할 일은 간혹, 분석을 멈추는 것이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생각을 잠재우고,

그저 느낌의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


나는 다시 그렇게 감상하고 싶다.

예술을 이해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었던 시절처럼.

설명하지 않아도 진동할 수 있었던 그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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