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비만을 ‘탐욕’이나 ‘자제력 부족’으로 설명하려 한다.
체중이 늘어난 사람은 절제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의지는 근육처럼 훈련해야 한다는 자기계발의 언어가 반복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비만은 현대인의 ‘정신적 공허’가 몸을 통해 드러나는 방식이다.
그것은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니라,
채울 수 없는 감정의 구멍에 음식이라는 가장 손쉬운 마취제를 부은 결과다.
우리는 왜 먹는가?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서?
아니다.
우리는 슬퍼서 먹고, 지쳐서 먹고,
지루해서, 불안해서, 공허해서 먹는다.
즉, 우리는 감정 때문에 먹는다.
현대인의 식욕은 칼로리의 문제가 아니라 결핍된 위로의 문제다.
연결되지 못한 인간관계,
소외된 노동,
끊임없는 비교와 불안,
그리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
그 안에서 음식은
가장 빠르고, 가장 쉽게, 가장 확실하게 우리를 ‘안정시켜주는’ 도구다.
음식은 지금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진정제다.
풍요의 시대라 불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결핍을 경험한다.
기준은 많고 만족은 없다.
우리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지만
늘 뭔가 부족한 느낌에 시달린다.
그 속에서 비만은 단순한 신체의 비대가 아니다.
그건 정신의 울부짖음이고,
결핍의 형태를 입은 몸의 저항이다.
당신이 먹고 있는 건 사실 음식이 아니라
‘나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순간’이다.
한 입 먹을 때마다
공허한 자아는 아주 잠깐, 잠든다.
그러니까
비만은 절제의 실패가 아니라, 존재의 피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으로 풍요한 국가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더 쉽게 무너진다.
가난은 확실한 고통이다.
하지만 풍요 속의 공허는, 의미를 상실한 고통이다.
제3세계 사람들은 단순한 생존에 집중해야 하지만,
제1세계 사람들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존재적 질문 앞에서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의 가장 흔한 결과는
우울, 중독, 폭식, 비만이다.
몸은 정직하다.
마음이 눌리면 몸이 부푼다.
억압된 감정은 살로 번역된다.
우리는 이제
비만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
그것은 단지 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심리의 상처, 자기 돌봄의 실패,
자신을 향한 분노 혹은 자학의 표현일 수 있다.
비만은 삶의 비명이기도 하다.
살이 쌓인다는 것은
마음이 무거워졌다는 신호다.
누군가가 체중을 늘려갈 때,
그를 비웃기보다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보아야 한다.
비만의 해결은 결코
다이어트 식단이나 트레이너의 피드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시작은
자기 마음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 고통을 음식이 아닌 언어로 말할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비만을 ‘몸의 전쟁’이 아닌
‘자기 존재를 회복하는 싸움’으로 바꿀 수 있다.
비만은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위로받지 못한 감정의 총량이다.
탐욕이 아니라 정신의 외침이며,
그것을 들을 줄 아는 사회만이
진짜 건강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