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누적 이론

by 신성규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은 한순간에 부서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랜 시간 침묵 속에서 조용히 허물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은 눈물처럼 흘러가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층처럼 쌓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슬픔을 순간으로 오해한다.

이별의 날 울부짖는 그 장면을 보며, 그저 오늘이 힘들겠거니 한다.

하지만 울음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시작이다.

수년간 눌러두었던 무언가가, 그제야 비로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을 “느끼고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느끼지 않은 감정은 저장된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휘발되지 않는다.

분노, 슬픔, 억울함, 고독, 모멸감, 배신감…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들은 심층 구조 속에 남아 무의식의 지층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마치 아직 터지지 않은 지하의 마그마 같다.


어떤 감정은 말로 표현되는 순간 약해지지만, 말하지 못한 감정은 오히려 그 순간부터 부풀기 시작한다.

표현은 배출이지만, 억압은 저장이다.


감정의 억압은 일종의 ‘정신적 채권’이다.

느껴야 했던 감정, 말해야 했던 말, 울어야 했던 순간이 생략되면, 그 순간은 뇌와 마음에 빚으로 남는다.

이 빚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를 붙인다.

슬픔은 분노로 변하고, 분노는 무기력으로, 무기력은 무의미감으로 증식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왜 무기력한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는 느끼지 못한 슬픔일 가능성이 크다.


영혼이 무너지는 순간은 종종 사소하다.

평범한 날, 아무렇지 않은 말 한 마디.

그 말이, 그 날이, 그 표정 하나가 오래전 미해결된 감정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리고 쌓이고 쌓였던 감정의 지층이 한순간 무너진다.

그래서 무너짐은 마치 돌연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친 정신의 암이다.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


감정의 누적은 자동으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느끼기 전까지,

우리가 먼저 알아차리기 전까지,

감정은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다.


느낀다는 것은 고통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고통을 다시 지나가야만, 감정은 비로소 해방된다.

그래서 진정한 회복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시 살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다.


사람은 순간에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은 축적된 감정의 무게에 의해 서서히 주저앉는다.

우리는 흔히 “왜 이 정도 일로 무너졌을까?“라고 묻지만,

진짜 질문은 이렇다.

“그 사람은 얼마나 오래 울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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