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젊은 시절부터 사유의 깊이를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그는 데카르트의 철학에 매혹되었으나, 곧 그것이 주는 결론이 애매모호하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데카르트 철학은 수학의 항등식과 같았다. 아무리 풀어도 답은 정해져 있고, 그 답은 결국 삶과 죽음이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논리적 탐구가 이 항등식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삶을 설명해도, 죽음을 설명해도, 답은 변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이 지점에서 철학적 사유만으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해명할 수 없다고 느꼈다. 답이 이미 정해진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행위는 그를 지치게 했고,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 절망 속에서 그는 종교를 찾았다.
당시 톨스토이는 전형적인 지식 계급주의자였다. 그는 사유가 깊지 못한 사람들은 가축과 다를 바 없다고 표현할 만큼,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을 지적 능력에 두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신학자와 종교 지도자, 고등한 학식을 갖춘 이들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형식과 논리, 그리고 체면에 얽매인 비진정성이었다. 그들의 신앙은 세련되었으나, 삶과 연결되지 않은 껍데기였다.
실망한 톨스토이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는 가난하고 미천한 순례자, 수도사, 농부들을 찾아갔다. 그들의 신앙에는 미신과 전통적 관습이 결부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그는 진실을 보았다. 그들은 신앙을 논리로 증명하지 않았고, 교리의 정합성을 따지지도 않았다. 대신 신앙을 삶의 호흡 속에 녹여 살았다. 그들에게 종교는 철학적 체계가 아니라, 매일의 고통과 기쁨 속에서 부르는 짧은 기도였고, 가난과 죽음을 견디게 하는 의지였다.
톨스토이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인생에 비관적이었지만, 민중의 단순하고 끈질긴 신앙을 관찰하며 그 절망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그는 깨달았다. 삶의 의미는 논리의 최종 해답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철학이 항등식의 답을 알려준다면, 신앙은 그 답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이후 톨스토이는 지식인의 언어가 아닌, 민중의 언어로 쓰기 시작했다. 문학은 그에게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잇는 다리가 되었고, 그 다리의 기초에는 민중의 신앙과 삶이 놓여 있었다. 그가 결국 철학보다 삶을, 논리보다 인간을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