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고리키의 혁명과 문화에 대한 소고를 읽고, 나는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혁명은 세상을 뒤흔드는 힘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혁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혁명을 준비한 문화다.
역사는 수많은 혁명의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중 많은 혁명은 잠시 눈부시게 빛나다가 곧 탐욕과 권력 다툼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변화의 불길이 무지 위에서 타올랐기 때문이다. 문화와 교육, 사유와 미학이 준비되지 않은 혁명은 진보의 이름을 빌린 혼란이 되기 쉽다. 사람들은 새로운 깃발 아래 모였지만, 그 깃발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고리키는 혁명을 단순한 권력 교체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인간을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리고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은 총이나 구호가 아니라, 예술과 문학, 사상의 깊이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혁명보다 먼저 문화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고, 공동체의 미래를 그릴 언어를 준다.
나는 이 통찰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는 많지만, 그 속에서 문화와 교육, 인식의 기반을 다지려는 계획은 드물다. 문화가 부재한 변화는 쉽게 분노와 단기적 이익에 휩쓸린다. 진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려도, 그 내용은 종종 소비적이고 일시적이다. 무지 속에서 탄생한 변화는 결국 또 다른 무지를 낳고, 혁명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을 만든다.
러시아 혁명조차 이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민중의 고통과 분노가 폭발해 체제를 무너뜨렸지만, 문화와 교육의 토대가 빈약한 상황에서 새 사회는 곧 권위주의와 억압으로 변질됐다. 고리키가 그토록 문화운동을 강조한 이유는, 바로 이 과정을 이미 예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과 문학이 인간의 정신을 해방시키고, 그 해방된 정신이야말로 새로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변화’를 말하는 이들의 언어를 유심히 듣는다. 그들이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 변화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총성보다 먼저 울려야 하는 것은 사유의 소리이며, 깃발보다 먼저 세워져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내면 속 가치관이다.
혁명은 시작일 뿐이다. 그 시작이 아름답고 지속되려면, 반드시 그 전에 문화라는 뿌리가 있어야 한다. 뿌리 없는 나무가 폭풍 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듯, 문화 없는 혁명은 곧 바람에 휩쓸려 사라질 것이다. 고리키의 말은, 바로 그 단순하면서도 잊히기 쉬운 진실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