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중고차를 본다.
어쩌다 보니 매물창을 들여다보는 게 하루 일과처럼 되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A클래스와 레니게이드를 번갈아 클릭하고 있다.
내가 원래 타던 차는 BMW 3시리즈.
좋은 차다. 잘 나가고, 잘 서고, 무엇보다 ‘내가 좀 달린다’는 착각을 하게 해주는 그 단단한 핸들감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 차를 너무 막 다뤘다는 것이다.
하자는 하나둘이 아니라 거의 서사다.
연식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엔진 소리만 들으면 퇴역 직전의 탱크다.
무엇보다 지겨웠다.
이 차를 타고 다녔던 내 과거, 그 시절의 감정, 거기서 탄생했던 사소하고 큰 실수들까지—그게 전부 차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가끔은 단지 새로운 기분을 위해 차를 바꿔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내겐 딱 그 타이밍이다.
A클래스를 처음 봤을 땐, 마치 패션지에서 튀어나온 차 같았다.
날렵하고, 작고, 도시적이고, 벤츠 엠블럼은 묘한 심리적 만족감을 줬다.
하지만 그 다음에 본 레니게이드는… 뭐랄까, 뭔가 귀엽다.
귀여운데 얘는 또 자기가 강하다고 착각하는 타입이다.
원래는 큰 SUV를 알아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차, 누가 안에서 뭔가 했을 것 같다…”
맞다.
카섹스.
뭔가 그 묘하게 넓은 2열 공간과 어중간한 창문 틴팅이 자꾸 괘씸하다.
나는 타인의 흔적에 예민한 사람이고, 그 ‘에어컨 틈 사이에 남겨진 낯선 기억’ 같은 걸 견딜 수 없다.
아니, 견디긴 하는데 내 상상력이 문제다.
과도하게 웃기고 과도하게 진지하다.
한 번 상상이 작동하면, 그 차에서 ‘음란한 유령’을 본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나는 작고 간결한 차만 본다.
더 좁고, 더 투명하고, 더 덜 상상하게 되는 차.
A클래스처럼 예쁘고 차가운 도시의 연인 같은 차거나, 레니게이드처럼 어디든 가자고 말하면서도 귀에 햇살 묻혀 있는, 그런 장난꾸러기 같은 차.
지금 나의 다음 차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A클래스일지도, 레니게이드일지도, 혹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이름일지도.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번엔, 에어컨 틈에서 타인의 야릇함이 느껴지지 않는 차여야 한다.
그게 내가 바라는 새 출발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