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착시

by 신성규

인간의 마음에는 묘한 역설이 숨어 있다. 결혼한 사람은 혼자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홀로 사는 사람은 결혼이라는 안정과 온기를 꿈꾼다. 많은 돈을 번 사람은 단순한 삶을 동경하고, 가진 게 적은 사람은 풍요의 세계를 그린다. 우리는 늘 ‘나에게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이 마치 행복의 해답이라도 되는 듯 여긴다.


이런 마음의 구조에는 결핍의 착시가 있다. 현재 내가 가진 것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 가치를 쉽게 잊는다. 반면에 가지지 못한 것은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처럼, 세부의 거친 면이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윤곽만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 속 불편함을 간과한 채, 그 결핍을 하나의 완벽한 그림처럼 상상한다. 결혼의 피로, 독신의 고독, 부의 불안, 가난의 단순함 속 고단함은 흐릿해지고, 오직 반짝이는 장면만이 남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가능성의 낭만이다. 지금의 삶은 이미 확정된 이야기지만, 가지지 못한 것은 여전히 무궁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현실은 제한과 타협 속에서 굴러가지만, 상상 속 결핍은 무제한의 자유와 기대로 채워진다. 우리는 완성된 문장보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더 마음을 주는 법이다.


그러나 이 욕망의 방향은 언제나 변한다. 결혼한 이가 독신이 되고, 독신이 결혼을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없는 것’을 찾아 헤맨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를 얻은 사람이 다시 안정적인 수입을 부러워하듯, 끝없는 순환이 반복된다. 이것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인간이 ‘더 나은 상태’라는 환상을 영원히 좇는 본능과도 같다.


아마 행복은 무언가를 갖는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이미 가진 것의 온도를 느끼고, 그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없는 것을 바라보는 눈은 자연스럽지만, 있는 것을 바라보는 눈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 훈련이 없다면, 우리는 평생 동안 행복의 주변만 맴돌 뿐, 그 한가운데로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결혼이든 독신이든, 풍요든 가난이든, 모든 상태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삶’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갖느냐’가 아니라, ‘지금 가진 것으로 어떻게 살아내느냐’일 것이다. 없는 것의 매혹에 눈을 빼앗기는 대신, 이미 손에 쥔 것의 빛을 오래 바라볼 수 있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결핍의 착시에서 벗어난 첫걸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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