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들, 혹은 위대한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부를 갖지 못했고, 명예도 충분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외로웠고, 누구보다 자주 버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가장 많이 주는 이들이었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지갑보다 먼저 마음을 내어놓고,
밥은 굶어도 누군가의 영혼을 먹여 살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타인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보다 더 분명한 진실이었다.
그것은 동정도, 자선도 아닌 존재적 동류의식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들의 삶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 당신은 그렇게까지 돕는가?
왜 당신은 그렇게까지 무너지는가?
왜 당신은 그토록 자신을 주는가?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슬프게 미소 짓는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한 번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주는 법을 먼저 배웠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이야말로 인류의 마지막 지성이라고.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살아낸 경험’과 ‘조용한 자기희생’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사람들.
자기희생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정서적 해탈에서 오는 무언의 깨달음이다.
그들은 자신을 비워내며 얻은 한 가지,
‘인간에 대한 경외’를 안고 살아간다.
경외란, 이해가 아니라 두려움과 존중이 함께 있는 상태다.
그들에게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면서도,
가장 숭고한 가능성이자 불씨였다.
지식보다도 위대한 연민,
권력보다도 깊은 자기소멸,
그 모든 걸 뛰어넘는
영혼의 자비를 본다.
나는 언젠가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을 잃는 대신, 인간을 품는 일.
그 길이 어쩌면 가장 먼 길이지만,
유일하게 인간을 남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