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지성의 희망

by 신성규

위대한 예술가들, 혹은 위대한 인간들이 있다.

그들은 부를 갖지 못했고, 명예도 충분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외로웠고, 누구보다 자주 버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가장 많이 주는 이들이었다.


자기 몸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지갑보다 먼저 마음을 내어놓고,

밥은 굶어도 누군가의 영혼을 먹여 살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타인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보다 더 분명한 진실이었다.

그것은 동정도, 자선도 아닌 존재적 동류의식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들의 삶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왜 당신은 그렇게까지 돕는가?

왜 당신은 그렇게까지 무너지는가?

왜 당신은 그토록 자신을 주는가?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슬프게 미소 짓는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한 번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주는 법을 먼저 배웠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이야말로 인류의 마지막 지성이라고.

지식이나 정보가 아닌,

‘살아낸 경험’과 ‘조용한 자기희생’을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사람들.


자기희생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정서적 해탈에서 오는 무언의 깨달음이다.

그들은 자신을 비워내며 얻은 한 가지,

‘인간에 대한 경외’를 안고 살아간다.

경외란, 이해가 아니라 두려움과 존중이 함께 있는 상태다.

그들에게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면서도,

가장 숭고한 가능성이자 불씨였다.


지식보다도 위대한 연민,

권력보다도 깊은 자기소멸,

그 모든 걸 뛰어넘는

영혼의 자비를 본다.


나는 언젠가 그런 사람 곁에 있고 싶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을 잃는 대신, 인간을 품는 일.

그 길이 어쩌면 가장 먼 길이지만,

유일하게 인간을 남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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