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브렐: 부적응이라는 순수

by 신성규

자크 브렐의 노래를 듣다 보면, 어른이 된 한 소년이 마치 여전히 세상의 어법을 이해하지 못한 듯 노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는 사회의 규범을 정확히 따르지 못했고, 누구보다 강하게 감정을 느꼈으며, 타인의 관심보다 내면의 충실함에 더 민감한 인간이었다. 그것이 그를 ‘부적응자’로 만들었고, 동시에 ‘순수한 시인’으로 남게 했다.


브렐은 브뤼셀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스스로를 그 사회에 속한다고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돕는 일을 하던 그 시절, 브렐은 이미 자신이 진짜 원하는 세계는 수치와 이익이 아니라 감정과 진실이 존재하는 곳임을 알고 있었다. 형식적 성공이나 타인의 시선은 그에게 아무런 매력도 없었다. 그는 사랑하고, 떨리고, 절망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의 음악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어린아이 같은 ‘감정의 원색성’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하지 않는다. 울부짖고, 간청하고, 미워하고, 사랑한다. 브렐에게 감정은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다. 어른이 되어도 결코 잃지 않은 감정의 날것이 그의 무대에서는 울부짖는다. 이는 그가 끝끝내 ‘사회화되지 못한 자’, 다시 말해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순수와 부적응의 결정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그때의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감정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말하는 고백이다. 브렐은 자라지 않았고, 자라기를 거부한 시인이었다.


사회는 브렐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불일치를 예술로 승화했다. 그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채, 그 영원한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그렸다. 부적응은 그의 상처였고, 동시에 그가 끝까지 지킨 순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브렐을 들으며 위로받는다.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 모두는, 그의 노래 안에서 자라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는다. 그것이야말로, 부적응이 예술이 될 때 가능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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