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최초의 언어를 읽는 것이다.
불, 별, 고통, 사랑, 신.
이 모든 단어가 처음으로 사람의 입에서 발화되었을 때, 그것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미를 창조하기 위한 행위였다.
나는 창작을 할 때마다 이 원형을 따라간다.
때로는 인도 힌두 신화의 창조신 브라흐마를 떠올리고,
때로는 구약의 욥처럼 고통의 끝에서 신과 대면하며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처럼 죄의식과 예언 속에서 떠돈다.
이 모든 신화는 하나의 구조를 품고 있다.
인간이 어떤 실존적 모순과 마주하며,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드는 구조.
어릴 적엔 모든 이야기가 서로 다른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되었다.
모든 이야기에는 영웅이 있고, 적이 있고, 시험이 있고, 죽음이 있고, 재탄생이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질문’이 있다.
“이 이야기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철학자가 되어 질문을 던졌고,
이제 창작자가 되어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신화적 대답을 쓴다.
이야기의 구조는 고대에서 왔고,
그 구조는 종교 안에 있으며,
종교는 곧 신화의 집합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어 신의 질서를 어긴다.
불은 지혜였고, 욕망이었고, 결국은 고통이었다.
그 장면은 성경의 창세기, 선악과 이야기와 연결된다.
불경에서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관통하는 법을 가르친다.
힌두교에선 모든 고통조차 환영(마야)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말한다.
모든 이야기는 다 연결되어 있다.
단지 언어가 다르고, 상징이 다를 뿐이다.
신화를 모르면 창작은 피상적이 된다.
신화를 알면 창작은 철학이 된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신화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창조자의 자리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