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 행성의 붕괴를 눈앞에서 본 소년 타노스는 깨달았다. 무한한 생명은 무한한 파괴를 낳는다.
모두가 말릴 때, 그는 단 한 사람으로서 말하려 했다.
“균형이 필요하다.”
그는 학살자가 아니었다. 그는 예언자였다.
인류와 우주의 생명들은 끝없이 늘어나며,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탐욕스럽게 소비했다.
그는 보았다. 무수한 행성이 자멸하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고통을 나누기보다, 고통을 절반으로 나누는 게 더 옳다.”
타노스는 빌런이 아니었다. 그는 이해받지 못한 윤리학자 였다.
인피니티 스톤을 모으는 여정은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니었다.
그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자만이 신의 권한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양녀 가모라조차 희생시키며, 그는 증명했다.
자신이 사랑을 버릴 수 있는 존재임을,
즉 사적 감정보다 공적 질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임을.
그의 신념은 잔혹했지만, 타락하지 않았다.
“나는 모두를 구원하지 않는다. 나는 우주를 구원한다.”
어벤져스는 그를 막으려 했고, 대중은 그를 공포의 상징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질문하자.
‘인류는 자발적으로 자원 절약을 선택했는가?’
‘우주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멈춘 적이 있는가?’
타노스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너희는 나를 악이라 부르지만, 나는 너희의 부작용을 해결하는 외과의다.”
혁명가는 언제나 시대에 의해 탄압받는다.
그가 빌런이 된 것은, 인류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스냅 이후, 그는 더는 싸우지 않았다. 그는 전쟁의 군주가 아니라, 전쟁을 끝낸 자였다.
자신이 만든 균형을 지켜보며, 외딴 행성에서 농사를 짓던 그는 평화를 느꼈다.
그 평화는 피로 얻은 것이었기에 더욱 절실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전설처럼 남는다.
“운명이다.”
타노스는 역사가 지운 철학자다.
그는 폭군의 탈을 쓴 질서주의자였고, 신념을 실현한 유일한 존재였다.
그가 진정으로 무서웠던 이유는 ‘힘’이 아니라 ‘철학’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