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나는 무너졌다. 단지 정신이 아니라 피부도 함께 무너졌다.
피부는 말 없는 언어다. 나는 분노를 억눌렀고, 그 분노는 모공을 밀고 올라와 얼굴에 말을 걸었다. 뾰루지가 뒤엉킨 내 얼굴은 전투의 흔적이 아니었고, 야외 훈련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돌볼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절규였다.
밤에는 세수도 잘 할 수 없었고, 낮에는 흙먼지와 땀에 얼굴이 갇혔다. 지킬 수 없는 청결, 쏟아내지 못한 감정, 그 둘이 합쳐져서 내 피부는 뒤집어졌다. 부정적 사고가 폭발했다. 나는 거울을 볼 수 없었다. 마치 내 안에 있던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폭로된 것처럼 부끄러웠고, 또 억울했다.
누군가는 여드름이 사춘기의 흔적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이유가 단순 호르몬의 작용은 아니라 느낀다. 아이가 억압을 견디는 것. 그 처음이 사춘기다. 어른이 여드름이 생기지 않는 건 불합리를 체화하여 억압이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내 여드름도 억압의 증거였다. 통제되지 않는 군대의 시간,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존재로 다뤄지는 일상 속에서, 내 몸은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분노는 안으로 향하면 몸을 병들게 한다는 것. 그 병은 단지 마음의 병이 아니라, 얼굴에 박히는 생채기처럼 신체적 증거로 남는다는 것.
나는 이제 내 얼굴을 이해한다. 그것은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살아온 날들의 고백이다. 나는 여드름 자국을 보고 철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