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것을 제대로 접해본 사람은 안다. 진짜 예술가란,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노인의 통찰을 동시에 품은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세상의 더러움과 무례함을 알아도 그 속에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상처를 품고 자신을 태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깊은 우울 속에 빠지고, 외로움 속에서 투명하게 무너진다. 이 순수함은 이 사회가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다. 순수하다는 건, 너무 부서지기 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말한다. ‘경쟁하라. 이겨라. 더 가져라.’ 그 속에서 인간은 점점 성과를 내는 사물로 진화한다. 행복이라는 본질적 목표는 자본이라는 수단에 의해 잊혀지고, 그 수단을 위해 모든 삶이 왜곡된다. 이제는 돈이 개성을 대신하고, 삶의 고유한 목적은 소비될 뿐이다. 진보라는 이름 아래 과학과 물질은 날마다 나아가지만, 인간의 정신은 오히려 후퇴한다. 우리는 풍요 속에서 목마르고, 쾌락 속에서 불행해진다.
왜 그럴까? 욕망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이 결핍과 충동의 동력은 원래 창조로 향하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소유로 향한다. 개성이 욕망을 주도해야 하는데, 이제는 욕망이 개성을 먹어치운다. 일시적 쾌에 집착하다 결국, 자신의 생 전체를 거기에 바치며 진짜 자아의 붕괴를 ‘성공’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괜찮다. 욕망하는 인간은 괜찮다. 하지만 인간성이 사라지는 걸 목격할 때, 나는 괴롭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술을 포기할 수 없다. 예술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마지막 전선이다. 자본주의에 매몰되어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똑같은 것을 욕망하고, 똑같은 패턴으로 살아가는 사이에서도, 예술은 ‘다름’을 기억하게 한다. 예술은 우리에게 아직 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 시스템은 멈출 줄을 모른다. 얻어도 얻어도,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은 우리 안의 공허를 키우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성의 실마리를 예술에서 붙든다. 내 실존은 무너지고, 다시 무너지지만, 그래도 믿는다. 인간은 아직 회복될 수 있다고. 나 하나라도 그렇게 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