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사랑’을 말하면서도 가식이라는 연극을 한다. 상대를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타협이라기보다 인내라 말하고, 양보라기보다 회피를 선택한다. 입으로는 “괜찮아”라면서, 마음속에서는 ‘왜 나만 참아야 하지’라며 부글거린다. 그런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 마치,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혼자 박수치는 배우처럼. 환상에 묶인 관계는 현실을 이길 수 없다.
신뢰 없는 사랑은 연극일 뿐이다. 솔직한 말 한마디보다, 고급진 말솜씨와 이미지 메이킹이 더 큰 가치를 갖는 사회에서, 진정한 관계가 형성되기란 어렵다. 누구도 쉽게 진실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누구도 상대의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사랑은 서로를 위한 희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과연 그 희생은 순수하게 상대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사랑 속에서 증명받고 싶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희생은 아닐까?
한국 사회는 특히 신뢰가 결여된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서, 사회에서,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진심을 드러내는 일이 꺼려진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묻는다. “얘는 날 진짜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이익이 있어서 곁에 있는 걸까?” 이 불신의 회로는 연애에서도 반복된다. 사람들은 점점 더 속마음을 감추고, 오히려 침묵과 쿨함이 성숙한 사랑이라 믿게 된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쿨한 태도는 사랑의 깊이를 얕게 만들 뿐이다. 깊은 사랑은 언제나 뜨겁고, 그래서 때로는 조용히 타오르지 못한다.
애정결핍을 위안받기 위해 지나치게 헌신적인 연애를 반복하거나, 자신의 공허를 감추기 위해 완벽한 이미지를 쌓아 올리는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진짜 자기를 살고 있는가?”
아무리 많은 관계를 맺고, 소통하고, 사랑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남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다. 사람들은 남을 속여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자신마저 속이기 시작하면 삶은 기형이 된다. 인간은 스스로와 맺는 관계에서 가장 큰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기만’과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