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나는 힌두교의 교리를 믿었다. 힌두교는 그 교리가 현실적인 면에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카스트 제도는 외부에서 보면 불평등한 시스템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을 현대 자본주의와 비교하며 현실적인 구조로 받아들였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깊이 뿌리내린 구조적 시스템으로,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유지 가능하고 현실적인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내가 끌린 것이다. 수학적으로도 매우 완벽한 시스템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그 체계가 존재하는 세상에서의 불가피한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진보적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미래를 원한다는, 좀 더 평등하고 보편적인 구원의 개념이 중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선지자들이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는 과정에 집중한다. 그러나 그것은 범세계적인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 개념이라고 생각되었다.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어 구원받는 사회, 즉 모두가 구원의 대상이 되는 세계를 꿈꾸는 것이 내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교리와 그 정신에는 매혹적인 점이 있다. 기독교는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속의 정신은 진지하고도 아름답다. 기독교는 인간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타인과 함께 가려고 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그 교리와 구조는 때로 너무 이상적이어서 실현하기 어렵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타인과 함께’ 구원을 향해 가려는 의지, ‘같이 가려는’ 태도에는 큰 가치가 있다.
이 점에서 기독교의 도덕적 정신은 내가 본 모든 종교적 관념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도 중요한 지점을 차지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인간을 구원하는 존재여야 한다. 기독교는 그 신의 존재 이유를 단순히 인간을 만들고 지배하는 것에 두지 않고, 그들 모두를 구원하려는 의도를 가진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나는 인류의 보편적 구원을 꿈꾸는 희망을 느꼈다.
물론 기독교 신자들 중 일부는 그 교리와 신앙을 오해하고 왜곡하여 종교를 신뢰하는 사람들이나 타인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진리의 오류에 빠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고 믿는다면, 그 사랑을 누구나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종교적 권위에 대한 순수한 신뢰와 사람들 간의 깊은 연대감을 기반으로 한다.
나는 기독교 정신이 단순히 나를 구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전체를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구할 수 없더라도, 나는 기독교 정신의 도덕적 우위를 통해 다른 이들이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내가 가진 구원의 사상이 단순히 개인적인 구원만이 아닌, 전체 사회와 세계를 향한 진리의 메시지로 확장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나는 기독교의 타인과 함께 가는 태도, 즉 모두가 구원받는 세상을 향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부조리를 넘어, 기독교 정신은 여전히 인류에게 필요하고, 그 자체로 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교리나 신학적 체계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를 알지만, 그 안에서 발견되는 ‘같이 구원을 향해 나아가자는’ 의지와 태도는 언제나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