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강도라는 직업에 낭만을 느낀다.
살인을 하지 않고, 약자를 괴롭히지도 않으며,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이 빼앗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그것은 강탈이라기보다는 저항이고, 선언이며, 유쾌한 반란이다.
나는 그런 은행강도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지금,
세상이 조금 더 무미건조해졌다고, 아니 비극적으로 단조로워졌다고 느낀다.
은행강도는 늘 복면을 썼다.
그들은 신분을 숨겼지만,
그들의 메시지는 선명했다.
“우리는 약탈자가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 괴물이다.”
그들은 가난했을 것이고, 고립됐을 것이다.
그들은 ‘가진 자들’의 세상에서 소외된 채,
‘가지지 못한 자’로서 극단적인 선택을 미학처럼 수행했다.
요즘은 그런 ‘강도’조차 없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체계 안에 순치된 존재들이다.
도덕과 윤리는 시스템에 의해 주입되고,
불복종은 병리로 진단된다.
은행강도는 단지 도둑이 아니라,
어쩌면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체제를 파괴하고자 했던 인간이었다.
그들이 사라졌다는 건,
그 정도의 강력한 자아와 불복종의 미학조차 허용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은행강도는 지금, 완전히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감시 카메라, 디지털 보안, 빅데이터, 예측 알고리즘.
인간이 계획하는 모든 불법은 이미 사전에 분석된다.
범죄마저도 ‘예방 가능한 확률’로 분해된다.
은행강도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시스템 바깥에서 상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그게 슬프다.
왜냐하면 은행강도는 단지 범죄자가 아니라,
정의롭지 않은 구조에 맞선 존재의 그림자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정직하고 고분고분하며,
감시받고 순응하고,
스스로를 범죄자처럼 감시한다.
그 결과, 더는 누구도 체제를 부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낭만을 말한다.
그들에 대한 동경은, 결국
내가 이 체제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고,
언젠가는 거대한 시스템의 금고에
작은 폭탄 하나를 던지고 싶다.
그 폭탄은, 진짜 화약이 아니라
사유와 질문, 그리고 불복종의 말들로 가득 찬 것이기를 바란다.
나는 은행강도가 될 수 없지만,
은행강도의 언어를 가진 철학자로 살고 싶다.
그건 어쩌면
이 시대에 남겨진 마지막 반란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