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는 어딜 가든 단맛을 피할 수 없다.
된장찌개조차 달고, 김치도 점점 단맛이 배어든다.
많은 이들이 이를 단순히 입맛의 변화, 식품 산업의 영향으로 해석하지만,
나는 이 변화의 이면에 집단 심리적 증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입맛이 달아진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지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사회적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
경쟁, 비교, 고립, 강박.
그리고 그 고통을 풀어줄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당’이 된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감정을 예민하게 만든다.
이때 몸은 빠른 회복을 위해 당분을 갈망한다.
당은 곧바로 혈류에 흡수되어, 우리에게 짧은 안도감을 준다.
심리적 위안을 위해 단 것을 찾는 건 생존적 본능에 가깝다.
따라서,
지금 한국 사회가 단맛에 중독되어 가는 것은,
공감, 여유, 안전이 사라지고 있다는 역설적 증거다.
서구 사회는 오래전부터 디저트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다.
그들은 오후에 파이와 티를 마시고,
식사 후엔 반드시 단 것을 먹으며
자기 몸을 “달래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에 반해 한국은 어땠는가?
단 것보다는 일의 효율, 자기관리, 깨어 있음,
그리고 피로 속에서도 버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우리가 더 늦게 당을 찾기 시작한 것은
사회적 피로가 포화에 이르렀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당은 뇌의 연료다.
마른 사람들, 혹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는 이들이
유난히 예민하고 예리한 감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종종 “컨트롤”이라는 이름의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과도한 절제는 정서적 쿠션을 빼앗는다.
단 것을 ‘절제’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지만,
사실은 마음에 숨 쉴 공간을 주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모습이 단순한 자기관리라기보다는
자기 억압, 자기 통제라는 현대인의 불안한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한국인은 매운맛과 단맛 모두에 강한 반응을 보인다.
이는 억제된 감정의 외적 방출(매운맛)과
내적 위안(단맛)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다.
감정을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문화는
음식이 감정 해소의 우회로가 된다.
비만, 당뇨병, 중독 문제는 단지 생리적 문제가 아니다.
이면에는 감정의 언어 빈곤, 정서적 위로의 부재가 있다.
이제는 묻고 싶다.
“이 사회는 왜 사람들의 감정을 먹지 않고, 설탕을 먹게 만드는가?”
건강한 사회는
‘음식을 덜 먹게 만드는 사회’가 아니라,
‘감정을 더 말하게 하는 사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