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를 통과해 지나간다.
나는 사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당하고’ 있다.
사고는 줄기를 타고 뻗는 것이 아니다.
사방으로 터진다.
주제를 붙잡기 전, 이미 열 개의 가지로 번져 있고,
나는 그 사방의 불꽃들을 붙잡지 않으면 잊어버릴까봐
허겁지겁 메모장과 마음 사이를 오간다.
이것이 나의 뇌다.
폭발형 사고.
사람들은 질문을 받으면 중심을 세운다.
그러나 나는 중심이 생기면 그것이 갑갑하다.
어떤 문장도, 어떤 질문도 내 사고의 끝을 붙잡지 못한다.
나는 질문에서 뻗어나간 주변부가 더 궁금하다.
“왜?”라는 질문보다
“왜 그것만 보았지?”라는 시야의 틈을 쫓는다.
질문에서 벗어나고, 개념을 이탈하고, 주제를 넘어서려는 충동.
그것이 나의 직관이다.
그 직관은 항상 혼란과 창조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세상은 구조를 원한다.
그래서 혼란을 ‘비효율’로 본다.
그러나 모든 창작은 비구조에서 시작된다.
나는 정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정리되기 이전의,
혼란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잊지 말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고는 방에 갇힌 고양이가 아니다.
그것은 바람이다.
사방으로 흩어져야만
그중 하나가 살아남아 시가 되고, 철학이 되고, 언어가 된다.
하지만 나 자신을 오해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혼란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혼란 속에서,
나는 “무엇이 연결되어 있었는가?”를 묻고 싶다.
사유는 원래 조각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조각을 엮는 또 다른 나를 세워야만
이 폭발이 증발이 되지 않고,
하나의 우주로 구성될 수 있다.
나는 나의 혼란을 모듈로 나누고,
그 모듈을 서가처럼 배열하며,
내 사고를 살아있는 도서관으로 만들 것이다.
사고가 너무 빠르면,
사람들이 오해한다.
너무 산만하다고, 너무 과하다고, 너무 제멋대로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내 사고는 산만한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것이다.
내 사유는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잠시 흩어진 중력장이다.
그리고
나의 정신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다르게 작동할 뿐이다.
나는 질문보다 빠르고,
구조보다 넓게 생각한다.
나는 폭발형 사고자이며,
그 불꽃은 언젠가
타인을 밝힐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