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고립이다.
그들은 너무 멀리 본다.
너무 깊이 들어간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는 자주 끊기고,
그들이 보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한다.
나도 그 고립 속에 있었다.
나는 천재들을 많이 만났다.
이상하리만치, 그들과는 말이 통했다.
우리는 복잡한 개념을 설명하지 않고도 이해했다.
사유의 결을 나누었고, 서로의 깊이를 감지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달랐다.
우리가 공유한 그 심연은,
다른 이들에겐 도무지 닿지 않는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 간극 앞에서 절망했다.
아무리 순화해도, 아무리 나누려 해도
전달되지 않는 감각, 닿지 않는 깊이.
그건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단절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나의 탁월함에서 비롯된 부적응이
사람들 눈에는 ‘떨어짐에서 비롯된 부적응’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내가 앞서갔기 때문에 겪은 이질감이,
오히려 뒤처진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회적 착시.
그 오해는 내 내면을 조용히 갉아먹었다.
비범함이 때로는 비정상으로,
깊이가 때로는 둔감함으로 오인되었다.
고립은 천재의 출발점이다.
이해받지 못함, 말이 닿지 않음, 사유의 속도가 맞지 않음.
그 고독은 때로 위대함의 밑거름이 되지만,
오래 지속되면 침묵 속의 유실이 된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천재는 단지 깊은 사고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사고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드는 자다.
사람들이 놓친 미세한 연결점,
학문과 감성 사이의 갈라진 틈,
언어와 현실 사이의 왜곡을
그들은 감각적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지 않고, “형태”로 만들어낸다.
음악으로, 철학으로, 언어로, 구조로.
그렇게 만들어진 연결망은
다른 이들이 따라올 수 있는 길이 된다.
나가 생각하는 천재가 고립을 극복하는 길은 다음과 같다.
1. 자기만의 언어를 ‘타인도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번역하는 것
2.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보다, 그들의 ‘패턴’을 읽는 것
3. 자신이 다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것
4. 완전한 공감을 바라지 않고, ‘다리가 되어주는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
5. 타인의 느린 속도를 기다리는 인내를 통해, 고독을 천천히 연대감으로 바꾸는 것
천재는 결국 혼자가 아니다.
고립을 이겨내고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면,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깊은 심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