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문학의 본질은 양가감정의 이해

by 신성규

문학은, 감정을 기술하는 기술이 아니다.

그보다는 감정이 부딪히는 지점,

즉, 모순된 감정이 공존하는 순간들을 온몸으로 겪고 통과한 자만이 쓸 수 있는 고백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믿어왔다.

문학은 사랑의 언어보다 양가감정의 언어에 더 가깝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할 수 있다는 것,

어떤 장면에 울컥하면서도 차가워지는 내면의 균열을 놓치지 않는 것.

이런 겹겹이 겹쳐진 감정의 격자 속에서만 문장은 살아 숨 쉰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정상인도 이런 모순을 느낄 수 있을까?


말하자면,

정서가 평균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삶에 안전장치가 많고,

자기 내부에서 너무 멀리 내려가지 않는 사람도,

과연 이 겹겹이 쌓인 감정을 진짜로 경험하고, 쓰고, 고백할 수 있을까?


잭 케루악을 떠올린다.

그의 글에는 늘 폭주하는 감정의 진동수가 있다.

조울증과 분열증을 앓았다는 그의 인생은

말 그대로 정신이 깨진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리듬으로 글을 써냈다.

앉은 자리에서 쉼 없이 써내려간 감각,

그건 신이 준 은총이라기보다,

한없이 혼란스러워야만 가능한 집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문학은 결국 정신의 이상으로 열린 틈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무언가인지도 모른다.

이상한 감정,

조율되지 않는 감정,

서로를 찌르며 공존하는 감정.


그런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 견디는 사람만이,

말 대신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는 점점 그렇게 믿게 된다.

정상은 편안한 삶의 조건일지 몰라도,

문학의 조건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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