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23화

지방에서의 성적 자유에 대한 한계

by 신성규

지방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성적 자유’가 얼마나 좁디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지를.


소도시나 작은 공동체에서 ‘자유로운 성적 관계’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연애든 섹스든, 관계를 맺고자 하는 순간부터 이미 소문이 난다. ‘한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니까’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관계의 익명성이 없는 지방에서 자유롭게 사랑한다는 건 곧바로 도덕적 심판대에 오르는 일이 되곤 한다.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누구와 밥을 먹었는지, 혹은 누구와 눈이 마주쳤는지까지도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퍼져나간다. 소문은 이곳에서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위축된다. 혹시라도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하면 곧바로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마치 작은 울타리 안에서, 감시자의 눈길 아래에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성적 자유를 실현하려는 사람은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몸이 움츠러들고, 마음이 좁아진다. 혹시라도 누가 알까 봐 두려워서 연애조차 조심스러워진다. 이건 단순히 가십거리가 되어서 창피한 게 아니다. 지방 공동체는 작은 사회망으로 얽혀 있어서 ‘누구랑 잤다더라’는 소문이 곧 친구, 심지어 회사 동료에게까지 순식간에 퍼져버린다. 그 파장은 엄청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로 떠난다. 낯선 땅에서는 아무도 나를 모른다. 이름도, 직장도, 가족 관계도 없다. 낯선 곳에서는 오히려 자유로워질 수 있다. 대도시는 인구가 많아 시선이 분산된다. 설령 누군가가 나를 알아본다고 해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는 마음이 들 수 있다.


이건 단순히 도시의 ‘놀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다. 자유를 찾아서다. 나를 옥죄던 공동체의 시선을 벗어나,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성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위기에 취해서’라기보다는 ‘여기서는 날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라는 심리적 안전망이 사람을 개방적으로 만든다.


익숙한 일상과 단절된 공간, 그리고 ‘관광객’이라는 임시적 신분은 우리를 한층 개방적으로 만든다.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낯선 분위기에 몸을 맡기며,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진다. 그것은 단순히 술기운이나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한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시선’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났을 때만이 비로소 찾아오는 자유의 감각이다.


지방이 주는 따뜻함과 공동체 의식은 때로 사람의 몸과 마음을 옥죄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족쇄를 풀어보고 싶어서라도 떠난다. 그리고 그 자유를 찾는 그곳에서야 비로소 ‘내가 나로서 살고 있다’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로, 혹은 자신을 모르는 낯선 곳으로,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를 찾기 위해 떠나는 동시에, ‘자유롭지 못함’을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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