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는 감옥을 연구했다.
하지만 감옥보다 더 집요한 구조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매일 거니는 일상, 학교, 병원, 회사, 가정, 그리고 나 자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권력은 더 이상 채찍을 들지 않는다.
권력은 당신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도록 만든다.”
푸코에게 권력은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훨씬 더 교묘하게 작동한다.
권력은 우리의 시선, 언어, 시간표, 감정까지 조직한다.
우리는 권력을 싫어하지만,
동시에 그 권력의 질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판옵티콘‘이라는 구조를 말한다.
모든 수용자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감옥 설계.
그러나 진짜 공포는,
감시자가 항상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 볼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수감자는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자발적으로 규율에 순응한다.
이 감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그것을 ‘SNS’, ‘성과 평가’, ‘비교’,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경험한다.
당신은 오늘도 자신을 얼마나 “잘 보이게” 꾸몄는가?
당신은 몇 초에 한 번씩 피드를 확인하는가?
오늘 하루,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한 적이 있는가?
당신이 지키는 건 감옥의 규칙이 아니라, 감옥 자체다.
푸코의 핵심은 이것이다.
권력은 특정한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흐른다.
선생과 학생 사이
의사와 환자 사이
상사와 부하 사이
푸코는 우리에게 충격을 준다.
우리는 권력에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그 질서 속에서 훈련된 존재라는 것.
‘정상’이란 말에 우리가 얼마나 익숙한가?
‘비정상’, ‘과잉’, ‘부적응’, ‘비효율’, ‘게으름’ 같은 말들은 누구를 위한 언어인가?
이 언어들조차 권력이다.
말하기 이전에 이미 선택된 질서.
현대인은 말한다.
“나는 자유로운 주체야.”
푸코는 조용히 말한다.
“너는 그 주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가?”
당신이 ‘합리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배운 건 어디서였나?
당신이 ‘성공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그 기준은 어디서 온 것인가?
당신이 매일 쓰는 시간표는 누구의 형식에 따르고 있는가?
푸코는 ‘주체성’이란 것도 하나의 발명품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발명은, 특정한 권력의 필요에서 비롯되었다.
푸코 철학의 가장 깊은 통찰 중 하나는 이것이다.
권력은 외부의 압제가 아니라, 내부의 형식이다.
고대에는 채찍과 사형대가 권력이었다.
근대에는 규율과 규범이 권력이었다.
오늘날에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권력이다.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양을 바꾼다.
추천 시스템, 빅데이터, 스마트워치, 헬스 앱,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선택’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신의 선택지를 설계하는 도구다.
자유는 확대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자유조차 누가 어떻게 정의했는지 묻지 않으면
우리는 “내가 선택했다”는 착각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푸코는 음모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모든 권력은 악이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단지 권력이 어떻게 우리를 구성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비판은 해체가 아니라, 인식이다.”
푸코 철학은 이 시대,
자기계발과 정신건강, 정치와 기술,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만든 구조’를 의심하게 한다.
너는 너를 감시하고 있지 않은가?
너는 진짜 너인가, 아니면 시스템이 훈련시킨 인간인가?
이 물음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때야말로 푸코가 웃고 있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