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천재는 비슷한 방식으로 시작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했다.”
“세상과 맞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일찍 깨어 있었고,
눈빛은 또래보다 깊었으며,
감정은 너무 정제되어 있었고,
외로움은 너무 조용했다.
그들은 일찍부터 관찰자였다.
참여하지 못한 존재.
느끼되 끼지 못하고,
웃되 진심으로 웃지 못하는 존재.
그 다음은 고통이다.
누구나 고통은 겪지만,
그들은 그 고통을 밖으로 던지지 못했다.
그 고통은 안으로 굴절되었다.
가족의 폭력, 이해받지 못한 감정,
차가운 거리의 풍경, 설명되지 않는 상실.
이런 고통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다.
햇살이 따갑고,
말 한마디가 칼처럼 느껴지고,
사람의 숨소리에도 눈물이 날 수 있다.
예민함은 고통의 증거이자, 창조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한 가지에 빠져든다.
그리고 주변을 잊는다.
“나는 그것만 생각했다.”
“세상은 뒷전이었다.”
자폐적으로 몰입하고, 반복하고, 수련한다.
세상은 그들을 ‘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건 선택이 아니었다.
그 몰입은 도피이자 구조화였다.
세계의 혼란을 감당하려면,
무언가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모든 것이 열리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의식이 폭발했다.”
“모든 연결이 선명해졌다.”
이것은 정상적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다.
시간과 공간의 구획이 무너지고,
생명, 사물, 언어, 수식이 하나로 연결되는 감각.
직관의 전율. 세계의 뼈대를 본다.
그 다음은 폭풍이다.
창조의 폭풍.
밤을 새우고,
시간을 잊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악보를 찢고, 수식을 정리한다.
창조는 그들에게 도피가 아니라, 파열이다.
감당할 수 없는 충동.
멈출 수 없는 손.
그들은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기에.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무언가가 부서진다.
어떤 날은 잠에서 깨어날 수 없고,
어떤 날은 깨어나는 것이 고통이다.
자해, 자살 시도, 조울, 정신병.
세계와 자아를 잇던 끈이 끊어진다.
고통은 더 이상 구조화되지 못하고,
그 자체로 그들을 먹어치운다.
그들은 떠난다.
이해받지 못한 채.
비웃음과 몰이해 속에서.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말한다.
“그는 앞서 있었다.”
“그 시대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남긴 것은,
삶이 아니라 생존의 구조화된 흔적이었다.
우리는 종종 그들의 작품을 보며 감탄한다.
그 음악, 그 시, 그 철학, 그 그림.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가 감당할 수 없었던 고통을
어떻게든 구조화하려던 몸부림의 흔적이었다.
그들은 단지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통받는 의식이었다.
그 고통을 말할 언어가 없었기에,
그 고통 자체를
음악으로, 수식으로, 그림으로, 문장으로 바꾼 자들이었다.
천재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예술로 번역한 사람이다.
그 번역은 치료였고,
그 치료는 그들의 마지막 구조화된 절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