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세상이 단순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결혼’, ‘내 집 마련’ —
이 모든 것이 행복의 지름길로 여겨졌다.
불평등했지만, 적어도 루트는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가이드는 사라졌고,
모두가 말한다.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그런데 막상 뭔가를 하려 하면,
사람들은 말린다.
“그건 위험해.”
“그건 실패할 수도 있어.”
“그건 무모해.”
하고 싶을 땐 막고,
안 하려 하면 책임을 묻는다.
결국 무조건적인 안정만이 ‘안전한 답’이 되고,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말은 허울뿐인 규범이 된다.
나는 점점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삶을 원한다.
정해진 루트를 걷고, 누군가가 안전하다고 보장해주는 미래를 원한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그 루트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정’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건 아니야.”
“그건 위험해.”
“그건 아직 때가 아니야.”
그들은 흔들기만 한다.
방향 없이, 책임 없이,
결정을 비틀고,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만든다.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인간은 너무 많은 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권위에 복종하거나, 사회에 동화되거나,
자신을 버리기도 한다.
그 말이 이토록 피부에 와 닿는 시대가 또 있었을까.
지금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게 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대부분의 조언은 사실상
“하지 마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고독을 택한다.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흔들기만 하고 대안을 내놓지 않는 사람들,
그 말들 속에 나를 맡기지 않기 위해.
나는 위험을 감수하는 쪽이 되기로 했다.
내가 만든 길이 끝내 막다른 길이더라도,
그건 내가 낸 리듬,
내가 걸은 고통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자유다.
위험이 있고, 실패가 있고, 책임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것.
자유란 ‘네 인생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는 무책임한 문장이 아니다.
자유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는 삶”이다.
지금 이 사회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안정을 강요하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선택을 마비시킨다.
그 안에서 고독을 선택한 자들만이
자기 인생의 리듬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