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관통해온 종교는 언제나 ‘진리’를 소유한 집단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해석하고, 구원과 저주의 기준을 정하는 이들은 대개 남성이었다. 여성은 오랜 세월 동안 ‘진리를 받을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되었고, 종교적 언어 안에서조차 수동적인 신체, 유혹의 기호, 타락의 원형으로만 존재해왔다.
구약성경에서 하와는 아담을 타락시키는 존재로 기록된다. 불교에서 여성은 윤회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남성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논의가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이슬람에서 여성은 신앙의 행위자이기보다는 규율의 대상으로 간주되며, 힌두교의 관점에서도 여성은 순결과 희생이라는 역할로만 규정된다.
종교 속 여성은 언제나 ‘타자화된 신체’였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자, 혹은 말해지기만 하는 자였다.
종교가 제도화되면서 ‘신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자격’은 남성 성직자에게만 허락된 독점적 권위가 되었고, 여성은 오직 복종과 침묵을 통해서만 구원의 문턱에 설 수 있었다. 그 구조는 “말할 수 없는 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철학적 명제를 현실로 만든다. 여성은 말하지 못했고, 그러므로 진리로부터도 배제되었다.
그에 반해, 아이러니하게도 공산주의는 여성을 역사 속 주체로 등장시킨 최초의 서사 중 하나였다. 공산주의는 종교가 그토록 미뤄놓은 ‘천국’을 현세의 평등이라는 방식으로 불러냈다. 여기에는 구분 없는 노동, 계급 없는 인간, 그리고 성별 없는 시민의 이상이 있었다.
물론 현실의 공산주의 체제도 가부장적 권력 구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사상 자체는 ‘모든 인간은 생산의 주체이며, 따라서 해방의 권리를 가진다’는 급진적 평등에 기반했다. 이는 종교적 해방론에서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선언이다.
공산주의는 말 그대로 ‘구원이 분배되어야 한다’고 외친 최초의 정치적 종교였다.
오늘날 종교는 여전히 ‘가부장의 언어’로 말하고 있으며, 여성은 여전히 교단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여성의 목소리는 이단이 되기 쉬우며, 질문은 불경으로 전락한다. 그에 반해, 마르크스주의적 언어는 적어도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선언을 정면에서 밀어붙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왜 여성은 신의 자리에 설 수 없었는가?”
“왜 여성은 구원을 말할 수 없었는가?”
“진리는 왜 남성의 목소리로만 들려졌는가?”
만약 종교가 구원의 언어라면, 그 언어는 반드시 평등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기존 종교가 이 평등을 보류해왔다면, 우리는 종교를 떠나 사상을 통해 구원을 말할 자격이 있다.
공산주의는 하나의 오류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오류는 최소한 여성에게 말할 권리를 부여했던 최초의 오류였다.
그리고 때로 인간은, 정확한 진리보다 말할 권리를 허락하는 오류 속에서 더 많은 자유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