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가 겪는 실존적 공황의 핵심

by 신성규

근대의 인간은 ‘주체’였다.

그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그 결정의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존재였다.

그의 삶에는 일정한 방향과 리듬이 있었다. 진학, 취업, 결혼, 승진.

이 리듬은 단지 사회적 루틴이 아니었다.

삶을 구성하는 시간적 질서, 의미를 형성하는 일종의 악보였다.


‘나’는 그 리듬을 따라 일하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섰다.

그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고,

세상과의 연결 속에서 진보와 성장의 감각을 누렸다.

사회는 개인이 ‘노력’을 통해 계단을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 계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전제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리듬은 해체되었다.

계단은 사라졌고, 방향은 흐려졌다.

그럼에도, 자기결정의 강박은 더 심해졌다.


“모든 것은 너에게 달렸다.”

“시대 탓 하지 마라. 네가 약한 거다.”


주체의 전통적 정의는 남아 있으나,

그 정의를 실현할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젊은 세대가 겪는 실존적 공황의 핵심이다.


현대의 젊은이는 더 이상 진짜 주체가 아니다.

그는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허구적 자유 속에서

끝없이 자신을 재검열하는 유사-주체에 가깝다.


구조적 불평등, 계급의 재생산, 지역과 가정환경의 격차는

‘노력 부족’으로 환원된다.

취업, 연애, 주거 문제 모두 개인의 역량 문제로 귀속된다.


“스펙이 약하니까 떨어졌고,

소득이 낮으니까 결혼을 못했고,

네가 성실하지 못해서 집을 못 산 거야.”


이런 서사는 구조를 사라지게 하고, 죄책감과 열등감만 남긴다.


푸코가 말한 ‘감시 권력’은 더 이상 외부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감시자는 사라졌고,

감시의 메커니즘은 주체 내부로 침투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 없이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감시하고, 계발하고, 비교하고, 벌한다.


이제 젊은이들은 구조가 무너진 세계에서,

자신을 스스로 감시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주체’가 아니라,

주체를 흉내 내는 피로한 연기자다.


기 드보르는 이 시대를 ‘스펙터클 사회’라고 불렀다.

삶의 실질보다, 이미지와 연출이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시대.

현실은 점차 소거되고, 삶은 연출되어야만 의미를 가진다.


SNS 속에서는

누가 더 잘 사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잘 연출하는가가 중요한 시대.

경험은 그 자체로는 부족하다.

‘보여지는 경험’만이 가치가 있다.


자기 존재를 콘텐츠로 포장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

‘나’는 더 이상 존재로서가 아니라,

브랜드로서 살아간다.

자기소개서, 이력서, 인스타그램, 포트폴리오.

이 모든 것이 ‘나’이면서 ‘나’가 아닌 것들이다.


이런 시대에서 주체는 실종된다.

남은 것은 연출된 정체성과 그 피로뿐이다.


과거에는 해야 할 것이 정해져 있었다.

그것이 억압적일 수는 있었지만,

적어도 분명한 리듬이 존재했다.


이제 우리는 자유롭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자유는 해방이 아니다.

방향 없는 무중력 상태다.


“나는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나도 선택하지 못하겠는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시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자유.

그리고 그 자유에 실패한 책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된다.


자유는 더 이상 해방이 아닌 강박이다.

성과는 더 이상 목표가 아닌 존재 조건이다.


우리는 성과를 내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한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라는 증명서 없이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종종 게으르다고 비난받는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다.


그들은 역사상 가장 성실한 세대다.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하고,

시간표를 쪼개고,

스스로를 점검하며,

자기 이미지를 관리한다.


그러나 그 성실함은 내면적 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소외될까 봐, 실패할까 봐, 뒤쳐질까 봐.

모두가 자신을 ‘상품’으로 경쟁시키는 성과 사회 속에서,

그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리브랜딩하고 셀프 PR 한다.


“나는 열심히 사는데, 왜 아무 데도 도달하지 못하는가?”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보상받지 않는다.

그건 당연한 전제일 뿐이며,

‘성과’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회.


그들이 지친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지나치게 성실했기 때문이다.


근대의 ‘의지적 주체’는 해체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못한 인간,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하지만, 존재감을 상실한 인간이 살아간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공해야 하며,

의미를 찾아야 하며,

자기를 사랑해야 하며,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이

결국은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자유다. 그런데 왜 나는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는가?”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아무 것도 이룬 느낌이 없는가?”


이 시대의 젊은이는

주체와 객체 사이,

자유와 강박 사이,

존재와 연출 사이를 부유한다.


그들은 리듬 없는 사회의 혼란한 템포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박동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질문은 남는다.

주체가 해체된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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